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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김경집 지음 / 시공사 / 2013년 6월
평점 :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현실을 향한 인문학적 성찰." 더 정확히 말하면 "교회를 향한 쓴소리"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고, 읽는 내내 불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어떤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바로 '교회'라는 믿음 위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은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문학자의 책입니다. 둘째 누나가 수녀님이고, 셋째 형이 목사님이며,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가톨릭대학교(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맡아 가르쳤다 합니다.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은 인문학자의 눈으로 복음서를 읽어가며, 한국 교회를 진단하고 현 한국 교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복음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성찰한 책입니다.
(제가 가진) 저자의 성경 해석에 관한 몇몇 문제점과 지적하고 싶은 어떤 신학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사는 교회가 어디 있느냐는 그의 반박과 복음의 핵심은 '실천'에 있다는 그의 외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이 '전부'를 말하지는 않지만, 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 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높게 이야기합니다. 마음속에 시뻘건 불덩이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부정하고 불의한 사회를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교회가 없고, 방향을 잃어버린 세상에 푯대가 되는 교회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인식하고 마음을 찢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예언자는 없고 제사장만 있는 듯하다"는 저자의 말이 회초리처럼 다가와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구약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이야기했다면, 신약은 예수를 좇는 삶에 대한 메시지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옳음을 외치는 설교는 무수히 행해지고 있지만, 본이 되는 교회, 존경받는 교회, 사회가 귀를 기울이는 교회가 없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아주 쉬운 언어로 복음을 전하고,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한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것, 그러한 삶에 '교회'가 얼마나 게을렀고, 무관심했고, 외면했는지 (더 늦기 전에) 벌거벗는 심정으로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도 그런 고민 속에서, 몸부림 속에서 탄생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이 교회와 상관없는 사람이 교회 밖에서 던지는 돌멩이가 아니라, 교회 속한 사람으로 회복을 위한 쓴소리가 목적이었다면, 자기 반성으로 쓰인 책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는 이 책을 쓰신 저자도 분명 예수의 삶을 표준으로 삼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 책임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교회를 타자화 하여 비난하는 것은 마음에 걸립니다. (1부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을 전부 무뇌아로 싸잡고, 한국 땅에는 천박한 목회자만 있는 것처럼 비난하는 말투는, 자신의 의로움에 사로잡힌 또 다른 '바리새인'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들어야 할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안에서 어떤 사랑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미 우리에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사랑'(희생)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교회를 아프게 하는 돌멩이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참된 변화의 동력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