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디자인을 말하다 토트 아포리즘 Thoth Aphorism
사라 베이더 엮음, 이희수 옮김 / 토트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규칙을 전부 마스터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심지어 규칙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체계가 아예 없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 에드 펠라 (1938~ )

 

 

'손으로 그린 타이포그래피의 거장'이라 불린다는 에드 펠라의 말입니다(85, 175). "백 명이 넘는 디자이너들의 생각"을 모았다는 이 책에서 가장 격하게 공감이 되는 명언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경험으로 기술을 익힌 사람들(실기)이 규칙(이론)을 무시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 후배에게 일을 가르치다 보면 지루한 이론은 제쳐두고 막바로 실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드럼을 배우려는 사람이 음악 이론은 무시하고 곧바로 채를 들고 드럼을 두드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깨 너머로 프로그램을 배워 편집일을 하는 분이 계신데, 아무리 감각이 뛰어나도 자신의 경험치, 그 이상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에드 펠라의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론을 배우지 않으면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계'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규칙(이론)에서 온다고 봅니다. "규칙을 알아야 그 규칙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말, 어떤 분야를 마스터 하고 싶다면,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고 싶다면, 꼭 새겨 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디자이너, 디자인을 말하다>는 "만사 제치고 남의 말만 모으러 다녔다"는 명언수집가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말"을 모은 것입니다. 이 책을 엮어낸 명언수집가는 "그들의 말에는 세상 보는 눈을 바꾸는 힘이 있다"(4)고 단언합니다. <디자이너, 디자인을 말하다>는 '아포리즘 시리즈' 중에 한 권입니다. <시인, 시를 말하다>, <건축가, 건축을 말하다>, <철학자, 철학을 말하다>와 같은 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 책을 골라 읽었습니다. 시와 철학과 건축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여지는 것보다 직접 그것과 마주하여 직접 영감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은 그것에 대해 말하는 디자이너의 "명철한 생각"을 통해 무엇인가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나는 작가처럼 디자인하고

디자이너처럼 글을 쓴다.

 

- 애보트 밀러 (1963~ )

 

 

"소소한 스케치를 수백 개 한 다음 그 중 하나를 고른다"(브루노 무나리)는 디자인 작업은 고된 노동이기도 합니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하나의 작품을 위해 수십 번, 수백 번의 시도를 합니다. 디자인 업체에 일을 맡기면, 적어도 3-5가지의 시안이 제시됩니다.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없지만 정답을 찾기 위한 수백 번의 시도는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자 하는 치열한 싸움이요,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인내요, 완성된 아름다움을 향한 질주입니다. 요즘은 "생활을 디자인하라", '업무 환경을 디자인하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저에게 이런 말들은 최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라는 미션으로 들립니다. 신문 배달을 하더라도 "신문이 대문 앞에 예쁘게 놓이기를 원했다"(빈스 프로스트, 10)는 디자이너의 말에서 우리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을 향한 숭고한 갈망을 봅니다.

 

 

<디자이너, 디자인을 말하다>는 심플한 책입니다. 디자인을 말하지만, 우리 생활에 적용 가능한 명언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음미한다면 디자이너는 자신의 길을 이끌어주는 빛을 발견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작업에 도움이 될만한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바꾼 한마디"라는 표현도 있듯이, 나를 바꾸는 데에는 많은 말보다 '한마디'면 충분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많아야 알차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은 이 책을 구입하기 전에 '미리보기'를 꼭 해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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