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소년 2
이정명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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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의 천국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소년

 

 

네 번째 날, 상하이에서 끝난 1권의 이야기는 2권 다섯 번째 날, 마카오로 이어진다. 1권이 길모는 배고픈 사람들이 사는 지옥을 경험했다면, 2권에서는 허울뿐인 풍요의 나라에서 불안의 지옥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숫자에 지배당하고 있는 자본주의자의 삶. "서울엔 밀고자도 없고, 배신자도 없어. 아이들은 마음껏 소리 지르고, 여자들은 큰 소리로 웃고, 남자들은 대통령에게도 욕설을 퍼붓지만 그들의 자유는 불안이라는 둑을 품고 있어. 많이 가진 사람은 더 가지지 못할까 불안하고 적게 가진 사람은 그나마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가지지 못할까 불안해하지. 불안은 희망이 없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 같아"(2권, 124).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갈 때마다, 길모에게는 마약 밀래, 사기도박, 살인이라는 죄목이 더해진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영애를 지켜주겠다는 것, 그녀를 배불리 먹일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2권에서 길모와 세상의 게임은 끝이 나고, 길모는 영애와의 약속을 멋지게 지켜낸다. "그녀는 날치에게 '제 생각만 하는 못된 년'이었고, 강씨 아저씨에게는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딸'이었으며, 쿤룬 어른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낸 여자'였고, 윤영대에게는 '미국으로 갈 여비와 돈을 가진 호구'였다"(2권, 194). 길모에게 영애는 무엇이었을까.

 

 

<천국의 소년>은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수학 천재가 벌이는 교묘한 미스테리이기도 하고, 북한과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하는 르포이면서, 삶과 죽음의 본질을 확대해보는 철학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세계의 실상(지옥)을 포착하는 그의 언어는 아름다워서 더 강렬하다.

 

"삶과 죽음은 1과 0으로 이루어진 이진법이다. (...) 있고 없음, 존재와 소멸, 실제와 허상, 너와 너,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세상. 가장 단순한 수로 이루어진 가장 복잡한 그 세계에서 0은 무, 소멸, 종결이 아니라 1을 성장시키고 완성시키는 1의 그림자다. 죽음이 삶의 절반인 것처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삶이 완성되는 것처럼"(1권, 14).

 

천국이 있다는 것은 지옥도 있다는 말이며, 지옥이 있어야 천국도 존재할 수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딛고 앞으로 한발씩 나아가는 길모의 삶은, 모든 것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폭노이면서, 동시에 삶은 그 그림자까지 껴안는 것이라는 위로로도 읽힌다. 

 

"그때 이런 생각이 났다.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덫에 갇혀 있고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위로가 필요한 것이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임을 알았다. 영애가 아닌 누군가의 몸이 닿아도 싫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내가 타인의 아픔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일 것이다"(2권, 122).

 

길모만의 '언어'와 '수'가 주는 아름다움이 영상으로 얼마나 잘 표현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천국의 소년>을 원작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든다면 엄청난 스케일의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한 대작일 수밖에 없을 듯. 뉴욕, 평양, 수용소, 두만강, 연길, 상하이, 마카오, 서울, 멕시코, 다시 뉴욕, 그리고 베른까지 도시가 바뀔 때마다 등장인물도 바뀌고 벌어지는 사건마다 장르가 달라지니 말이다. (주인공은 배우 '유승호'를 강추합니다!!!)

 

<천국의 소년>은 잘 읽힌다. (개인적으로는 1권의 이야기에 비해) 정점에 이른 뉴욕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붕 뜨는 듯 정밀한 리얼리티가 부족해보이고, 통쾌해야 할 베른의 '반전'에서 오히려 맥이 빠졌지만, 그래서 약간 '싱거운 뒷맛'이 살짝 아쉽지만, 수수께끼가 모두 풀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며 읽었다. 뒷내용이 궁금해 허겁지겁 읽어버렸지만, 아름다운 문장을 다시 곱씹으며 아껴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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