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의 모든 빵 - 오늘은 무슨 빵을 구울까?
이시자와 기요미 지음, 박정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제빵 전문가를 위한 레시피와 일반 홈베이커를 위한 레시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표지 날개 중에서)
어릴 적, 엄마는 옥수수빵을 자주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린 사먹는 게 더 맛있다고 우겼지만, 엄만 우리가 진짜 맛을 모르는 거라 하셨습니다. 사먹으면 간단할텐데, 엄마는 별로 힘든 기색도 없이 빵을 만들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끈한 빵을 우리 앞에 자랑스레 내놓으셨습니다. 그때는 맛보다도 이스트를 넣으면 두 배로 불어나는 반죽이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어느 날은 케이크도 만들어주셨는데 '우리 엄마'가 '케이크!'도 만드실 줄 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엄마, 어떻게 이런 것도 다 만들줄 알아? 어렸을 때 먹어본 적도 없을텐데" 하며 감탄을 하면, "돈만 줘봐. 먹고 싶은 거 다 만들어줄께"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빵을 만드는 기본 원리를 알고 계셨고, 그것을 잘 응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빵>은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바로 그 빵 같은 빵입니다. 본격 홈베이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습니다. 집에서 빵을 만드는 사람을 배려하고, 고려한 레시피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10년 가까이 거의 매일 빵을 굽는 생활"을 했다는 빵의 달인이지만, 홈베이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최적의 환경에서 일하는 전문가에겐 반죽도 발효도 어렵지 않지만, 협소한 주방에서 전문 기구 없이 빵을 굽는 홈베이커에겐 재료 계량부터 온도 맞추기까지 모든 과정에 손이 많이" 가는 것을 십분 고려하여 홈베이킹 노하우를 일러줍니다.

"여섯 가지 기본 반죽만 익히면 세상의 모든 빵이 뚝딱!"
<세상의 모든 빵>은 무척 똑똑한 책입니다. 공식을 알면 숫자가 바뀌어도 같은 유형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수학처럼, 여섯 가지 기본 반죽의 공식을 토대로 재료를 응용하여 '세상의 모든 빵'을 만들어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해줍니다. 기본 빵 반죽, 기본 식빵 반죽, 기본 크루아상 반죽, 기본 바케트 반죽, 기본 천현효모빵 반죽, 퀵브레드 반죽을 마스터하면 다양한 재료의 응용이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 기본 반죽의 개념을 잡고 나니, <세상의 모든 빵>이 가뿐하게 정리되는 기분입니다.

"일본에 가면 꼭 먹어봐야지 했던 멜론빵"
<세상의 모든 빵>은 저자가 일본 선생님이니 당연히 재팬 스타일 홈베이킹입니다. 일본에 가면 꼭 먹어봐야지 했던 빵이 있습니다. 일본을 상징한다는 '멜론빵'입니다. 단팥빵과 함께 일본인들은 멜론빵을 '추억의 빵'으로 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가장 대중적인 빵이라고 합니다.
멜론빵은 멜론이 들어간 빵이 아니라(지금은 멜론이 들어간 멜론빵도 있다고 합니다) 빵의 표면이 멜론처럼 격자무늬라고 해서 멜론빵이라고 부른답니다(76). 멜론빵은 기본 빵 반죽에 건포도와 쿠기 반죽을 응용하여 더한 것입니다. "겉은 바삭바삭하지만 건포도를 넣은 속은 달콤하고 폭신폭신해 간식으로 안성맞춤"이라고 하네요.

<세상의 모든 빵> 레시피는 제가 지금까지 본 홈베이킹 레시피중에 가장 친절하고 꼼꼼하고 자세합니다. <세상의 모든 빵>을 대표하여 멜론빵의 레시피를 보면 이렇습니다. 몇 개 분량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인지 설명하고, 미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러준 뒤에, 만드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큰 덩어리로 나누고, 세부 과정은 사진 설명과 함께 진행됩니다. 만드는 과정을 번호로 정리했는데, 그 번호에 해당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point"라 쓴 말풍선으로 한 번 더 짚어줍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주신 빵을 먹으며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세상을 좀 알게 되어서 그런지, 삶의 의미를 자꾸 되새기게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훌륭함의 가치가 급속하게 바뀌어갑니다. 소박한 일상에 자꾸 마음이 갑니다. 전에는 별로 대단찮게 보였던 일이 지금은 가슴 찡한 감동을 줍니다. 엄마가 직접 빵을 만들어주셨던 일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그 따끈한 빵을 나눠먹는 일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었는지 지금에야 제대로 보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잊고 산지 오래지만, 그 꿈을 다시 불러낼까 합니다. 이제는 진짜 훌륭한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홈베이킹 레시피를 보면 너무 오버하는 것 같지만) 맛있는 빵을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그런 삶 속에서 진짜 행복을 찾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예쁜 요리책을 보면 마음이 참 흐믓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