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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법'이 곧 정의라는 그럴듯한 착각
멋모르던 시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외화는 내게 '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치열하게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상에 감동받은 나에게 "법은 공정한 것"이라는 등식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믿음'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이라는 제목을 보며 씁쓸하지만 이렇게 되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을 아직도 하는 사람이 있나?"
"내 글에서 말하는 일관된 주제는 사법체계의 청렴성, 즉 '정의의 실현과 법의 역할이 과연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6).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은 "미국 법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는 스티븐 러벳 교수의 책입니다. 저자는 병리학자가 질병을 연구하고, 도시계획자가 교통체증을 측정하고, 기상학자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심정으로, 사법체계의 "잘못"된 행위와 관행을 분석하여 '보다 나은 대안'을 찾고자 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니까 '법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법과 정의의 딜레마를 폭노하고, 그럼으로써 그 딜레마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보고자 함입니다.
저자 스티븐 러벳 교수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등장하는 킹스필드 교수님을 닮았습니다. 킹스필드 교수님은 집요한 질문 세례로 법학도들을 떨게 만들며 공부하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교수님입니다. 유능한 변호사가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사건의 핵심을 파고들고 진실을 드러내듯이, 재판 사례와 사건을 예시로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듭니다.
월마트의 사진현상소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고객의 사진을 현상하다 아동학대를 발견하고 신고하여 한 아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월마트의 업무 규정을 어긴 잘못으로 해고되었습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지키려는 월마트 규정과 학대 당하는 아이를 구하려고 빠른 판단을 내린 직원. 우리는 쉽게 직원의 영웅적인 행동을 칭찬하며 부당해고는 당연히 취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 법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은 "이 상황에서 윤리적으로 올바른 단 하나의 해결책을 내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어째서 그런지 미묘한 법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 사건은 월마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월마트의 재판이나 변호사를 믿지 않은 클린턴의 실수,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간 오스카 와일드 재판과 같이 흥미진진한 사례가 등장하는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힙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좀더 어려운 사법'체계' 문제로 들어가면서 다소 지루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배울 것,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는 책입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맞지요?) 법이 정의롭고, 공정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면 이 사회의 약자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합법적'인 폭력과 착취가 날뛰겠지요. 법조인 스스로 자존심을 세워주지 않으면 사법체계는 정화되기 어렵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자신에 맞서려 한다면 언제든 '법'의 힘을 휘두르려 들테니 말입니다. 법의 딜레마, 재판의 허점, 사법체계의 불완전함을 알수록 더 깊은 절망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의와 공평한 집행을 위해 법이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법보다 불합리하고 무서운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