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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느끼는 시간 - 밤하늘의 파수꾼들 이야기
티모시 페리스 지음, 이충호 옮김, 이석영 감수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깊은 밤하늘을 들여다볼 때마다 흔히 느끼지만, 현실보다 더 환상적인 것은 없다"(387).
지금은 먼 이웃 나라의 일처럼 생소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제가 꼬마 시절에 등화관제훈련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쟁을 대비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폭격을 대비한 훈련이었을텐데, 제게는 그저 온동네가 불을 끄는 날이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여기 저기서 "불 꺼요, 불!"이라는 무서운 호통이 들려오면서 온동네가 일순간 캄캄한 어두움에 잠겼습니다. 창밖으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가려놓고 TV를 보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어둠이 불편하고 답답해 촛불을 켜는 집도 있었지만, 저는 아빠를 졸라 옥상에 올라가곤 했습니다. 모든 불빛이 사라지면 서울의 밤하늘이 제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반짝이는 검은 호수, 그 아름다운 밤하늘은 끝을 모르는 우주와 맞닿아 있었고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우주를 느끼는 시간>을 읽으니 그렇게 옥상에 올라 북극성을 배우고, 북두칠성에 관한 전설을 듣고,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익힌 뒤로 아름다운 밤하늘을 거의 잊고 지낸 지난 시간들이 몹시 아쉬워집니다. 화려한 조명과 네온사인에 가려 밤하늘의 별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우주의 경이를 잊고 사는 우리의 팍팍한 일상이 얼마나 가난해보이는지요.
<우주를 느끼는 시간>에는 "그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미 십 대 시절에 토성의 고리들에서 '바퀴살'이 방사상으로 뻗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세히 묘사한 그림을 그렸다"는 오미라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그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19세기 관측자"라고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저 별빛이 좋았다"는 오미라는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직접 들여다 보는 낡은 방식으로 별을 관측합니다. 그가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담을 들려줍니다. "이웃에 사는 거친 애들도 내게 하늘에 대해 묻곤 했지요. 그들은 거리 모퉁이에서 몰래 담배를 피웠는데,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고는 때리는 대신에 '얘, 저 별 이름이 뭐니?'라고 물었지요. 그 애들에게도 하늘은 경이로운 대상이었지요. 나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진짜 밤하늘을 볼 기회가 있다면, 만질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는,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를 믿을 거라고 생각해요"(83). 이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싸르르 아팠습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데,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마저 기억에서 지워버린 채 살고 있다는 순간의 자각이 마음에 어떤 공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느끼는 시간>은 천체 과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책이 "세 가닥의 실을 꼬아 하나로 합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가닥은 평생 동안 직접 하늘을 관측하면서 겪은 저자의 경험담이고, 두 번째 가닥은 현재 아마추어 천문학을 휩쓸고 있는 혁명에 관한 기록이며, 세 번째 가닥은 우주에 있는 천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빛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에,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의 시간에 우주 공간 속을 달려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우주를 느끼는 시간>은 바로 그 별빛과 만나는 흥분과 감동, 아름다운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바로 그 일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천체 관측자들 중에 왜 '아마추어'가 많을 수밖에 없는지 새삼 알게 되었고, 인류가 간직한 위대한 천문학적 발견들이 아마추어 관측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우주를 느끼는 시간>이라는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저자 '티모시 페리스'라는 이름에 붙은 찬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동시대 최고의 과학 저술가'로 불리며, 그의 다른 작품 <우주의 모든 것>과 <은하 시대의 도래>는 "20세기에 출판된 중요한 책들"(뉴욕타임스)에 선정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주를 느끼는 시간>은 인공불빛들 아래 살며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가까이에 있는 '환상적 현실'을 일깨웁니다. "우주는 음악이나 미술, 시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는 저자의 글은 또다시 우리에게 음악이 되고, 시가 됩니다. 밤하늘에 한 번쯤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나와 다른 열정과 흥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들을 통해 새로운 자극과 떨리도록 아름다운 우주의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