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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힘 - 다시 세우는 교회 이야기
옥성석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3년 5월
평점 :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인류의 역사는 힘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힘을 과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힘에 억눌린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에 매력을 느낍니다. 뺏고 빼앗기는 살벌한 세상에서 살려면 제 목숨이라도 지킬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다 못해 '밥심'이라도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오늘도 '힘'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궁극의 힘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성경 느헤미야는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배경에 깔고" 있습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앗수르, 신바벨론,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치열한 패권타툼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술 맡은 관원'이라는 권력의 핵심부에서 "넓게는 제국들의 흥망성쇠라는 역사를, 좁게는 궁궐 내부에서 벌어지는 파워 게임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면서, 힘을 얻기 위해 또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 비정한 투쟁과 각고의 노력을 쏟아붓는 냉엄한 현실"(12)을 똑똑히 지켜봤던 인물입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권좌를 버리고, 당시 '힘없음'의 상징이었던 예루살렘, 폐허나 다름없는 조국으로 돌아가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섭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드디어 낙성식을 거행하는 그 날, 재건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감격하고 있는 백성에게 외친 느헤미야의 메시지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는 말씀이었습니다. <궁극의 힘>은 이 한 절의 말씀이 느헤미야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보고, 느헤미야를 모델로 세력 권력이 아니라 여호와를 힘으로 삼는 방법을 풀어줍니다.
<궁극의 힘>은 먼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섯 가지로 정리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란 무엇보다 말씀을 기뻐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것이요, 회개하는 것이요,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요, 약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궁극의 힘이 여기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그야말로 왕과 다를 바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아름답고 안전한 곳에서 세상 권력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비록 황폐한 땅일지라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것이 "형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264). 그는 무엇이 궁극의 힘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궁극의 힘>은 "돈, 명예, 학벌, 인맥, 외모"를 최고의 힘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궁극의 힘인가?"를 묻습니다. <궁극의 힘>은 우리에게 위조된 힘을 분별하라고 외칩니다. 느헤미야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났던 치열한 패권다툼 속에서 절대 멸망할 것 같지 않았던 대제국들이 신흥 세력 앞에 힘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 권세는 길어야 10년입니다. 위조된 힘을 분별하지 못하고 속아 살면 그 권세가 스러질 때, 우리 인생도 허망하게 스러지고 말 것입니다.
좋은 것은 소문이 나게 마련입니다. 옥성석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책으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같은 내용이 도돌이표처럼 계속 반복되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느헤미야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성공'이 우상이 되는 시대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세상에서의 성공, 세상의 권좌에 오르는 것을 형통으로 생각하고 축복으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하면, 하나님을 이용하여 세상 권력을 탐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며 살 수 있습니다. <궁극의 힘>은 오늘날 교회가 왜 세상을 향한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힘"이라는 것! 그것을 다시 붙들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