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문학으로서 삶
알렉산더 네하마스 지음, 김종갑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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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라는 이름은 20세기를 스쳐 지나간 상이하고 다양하며 이질적이기도 한 사랑에 붙어 다니는 구호이며 수사였다. 어디에서나 등장하지만 정작 그의 정체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11).

 

 

"니체" 하면 "신은 죽었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아포리즘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산으로 들어가 십 년 동안 명상을 즐긴 은둔자입니다. 명상을 통해 깨달은 지혜를 인간에게 베풀어주기 위해 산을 내려오며 차라투스트라가 한 말이 "신은 죽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는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니체의 "초인" 사상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아포리즘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특한 책입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위해 시도했다가 중도에 포기한 독자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몇 번이나 정독을 시도해보았으나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철학책이라기보다는 문학책에 더 가까운데도, 철학으로도 문학으로더 잘 읽히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니체', 익숙한 그 이름만큼, 그가 말한 사상에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책 읽기에 다시 도전해보았습니다. 니치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한 책은 없다는 평판에 마음이 쏠렸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결론은 이것입니다. "니체는 이해하기 어렵구나!"

 

이 책의 역자는 "니체의 해석"에서 니체가 얼마나 해석하기 어려운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때 니체의 사상을 다윈의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따. 또 그의 권력의지와 초인이라는 개념이 나치즘과 관련되어 터무니없이 오해되기도 했다. 실존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에 니체는 실존주의의 대명사처럼 입에 오르내렸다. 프랑스와 미국의 해체론이 위세를 떨치던 1970년대에 해체의 선구자로 재평가되기도 했다. 니체라는 이름은 20세기를 스쳐 지나간 상이하고 다양하며 이질적이기도 한 사랑에 붙어 다니는 구호이며 수사였다. 어디에서나 등장하지만 정작 그의 정체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11).

 

니체 해석이 이렇게 다양하고, 또 어려운 이유는 그의 "스타일"이 난해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의 저자 알렉산더 네하마스는 니체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데서 이 책을 시작하고, 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의 다채로운 스타일이 걸림돌이 되어 독자들이 쉽사리 니체에게 익숙해질 수가 없다(83). 니체가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로 독자를 당황시키는 것은 "독자에게 충격을 가하고 싶어" 한 것에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236).

 

이 책은 30년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여전히" 니체 연구의 고전으로 그 권위를 잃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역자는 이 책의 논지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 책에서 네하마스는 니체의 사상을 일상적 삶의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절박한 문제의 지평에서 제시하였다. 그에게 니체는 무엇보다도 기구하고 고단하며 고통스러웠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한 탁월한 예술가이다. 삶이 곧 작품이며 철학이었던 것이다"(13).

 

니체의 것이 어려운 것만큼, 이 책도 어렵습니다. 니체를 연구하는 학도가 아니면 소화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니체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연구를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 니체의 사상이니 어설픈 지식을 늘어놓는 것 자체가 니체에 대한 무지를 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체의 사상에 대해 누군가 자신 있게 말을 늘어놓는다면 이제 그 깊이에 대해 의심부터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니체는 어렵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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