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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 톨스토이 단편집 ㅣ Echo Book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병준 옮김 / 샘솟는기쁨 / 2013년 3월
평점 :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해석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 안에 있는 단순하고 평범하며, 이해하기 쉽고, 의혹이 없는 가르침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적용되는지 이해하였다. 또한 내가 이해한 것이 어떻게 내 영혼을 바꾸어 놓았으며, 평안과 행복을 주는지 말하고자 한다"(4).
<파우스트>는 정말 괴테가 썼을까요? 엉뚱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컴퓨터로 분석을 하면 <파우스트>를 괴테가 썼을 가능성이 10%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작가 안에서 하나의 작품이 잉태되어지기까지, 작가 안에 뿌려진 세상의 "씨앗"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볼테르와 괴테 이래 그토록 오랜 기간 그런 명성을 누린 작가가 없었다"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세상의 씨앗은 무엇일까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그의 신앙이 아닐까 합니다. 톨스토이처럼 중년의 나이에 회심하여 신앙(종교)을 갖는다는 것은 그의 내면에 혁명이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가치체계가 전복되는 일이며,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톨스토이는 이상과 쾌락 사이의 모순에서 갈등하며 자기 환멸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천상의 삶을 꿈꾸기보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한 듯합니다.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는 "오십 세를 넘긴 나이에 기독교로 회심하면서 영적 방황을 마치고 삶의 본질을 알게 된 후 쓴 신앙고백이며, 신앙적 관점에서 쓴"(8) 톨스토이의 단편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의 영혼을 바꾸어 놓고 평안과 행복을 주었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는 일"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과 고민을 주었음이 분명합니다. 이 책에 담긴 8편의 단편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이 책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있는 자들의 한가한 대화>라는 짧은 단편은 신앙인들의 이중적인 삶의 태도를 폭로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노인이 이제라도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결혼한 남자는 그의 부인과 자녀를 힘들게 하면 안 되고, 경건한 방식이 아니라 과거의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23)고 주장합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 왜 굳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느냐고 비난합니다. 톨스토이는 이 짧은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 책에 실린 '묵상글'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톨스토이는 그보다 더 심각한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다. 다른 이의 신앙과 삶을 하나님으로부터 끌어내리려는 악한 모습이다. 자신만 못하면 그나마 봐주겠지만 다른 이가 하겠다는 것까지도 가로막는다. 왜? 그것은 자신의 모습이 합리화 되지 않기 때문이다"(25).
오십 세를 넘긴 나이에 회심을 하고 비로소 행복을 발견했다는 톨스토이가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히, 그리고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은 이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두 친구(남자)의 전혀 다른 삶을 대비시킨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는 물질적 풍요와 세상 권력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세상이 목표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버림으로써 풍요로워지고, 섬김으로써 자유한 기독교의 역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복이 폭력에 있지 않고 복종에 있다는 것을, 부에 있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78).
모든 것을 다 잃은 뒤, 가난한 일꾼으로 살아가는 노인 부부의 고백을 담은 <일리야스>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140)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 우리 두 늙은이는 지난 오십 년을 행복을 찾아 살아왔지만 찾지 못했어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우리는, 일꾼으로 살아온 지난 두 해 동안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더 바라는 게 없답니다"(136).
톨스토이의 이 단편집에서 우리는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 거기에 바로 진정한 행복과 평안과 만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이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3부로 묶인 <세 은자>, <회개하는 죄인>, <하나님은 진실을 아시지만 기다리신다>는 세 개의 단편은 신앙 연륜이 있는 신자들이 읽으면 좋을 이야기입니다. 믿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이야기들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돌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알았다"(184).
톨스토이는 "수백만의 소박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말한 것을 이해하거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4-5)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일자무식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쉬운 것이며, 또 쉽게 전달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야기'로 메시지를 전하셨던 예수님처럼, 톨스토이도 우리에게 '이야기'(소설)를 들려줍니다. 이야기가 던져주는 메시지의 깊이를 생각하며, 그가 왜 대문호인지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특별히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