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저도 고치실 수 있나요? - 맥스 루케이도의
맥스 루케이도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만큼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러니 온 세상이 그분을 구주라 부를 수밖에 없다"(49).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을 꼽겠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 것인지,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까지 하셨는지, 그리하여 우리는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보다 더 아름답게, 더 생생하게, 더 탁월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분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가치는 예수님이 정하신다"라는 소제목의 이야기는,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저자의 명성을 확인시켜 줍니다. 목사님은 누가복음의 기록에서 '십자가에 달린 악한(우편 강도)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악한이 천국을 얻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이 악한만큼 무가치한 인간도 드물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죽어 마땅한 이 인간 쓰레기를 구원해주셨을까?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는 것일까? 이해를 돕기 위한 예화의 탁월함이 놀랍습니다. 어떤 백화점에 밤손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밤손님은 물건을 훔치는 대신 가격표를 모조리 바꿔 놓았"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푼돈에 팔리고 싸구려는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진풍경이 매일같이 펼쳐지고 있다."

 

다시 '십자가에 달린 악한(우편 강도)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 남자가 예수님께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기신다. 잘생길 필요도, 능력이 뛰어날 필요도 없다. 당신의 가치는 타고난 것이다. (...) 당신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있다"(41-49).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고 또 일합니다. 경쟁하고 또 경쟁합니다. 쉴 때조차 힘이 듭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그렇게 지쳐가는 우리에게 이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가치는 내장형이다. 우리는 가치를 타고났다. 사람은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가치가 있다"(47).

 

 

  

"이 병자의 육체를 고치기 위해서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보혈이 필요했다. 육체의 치유는 편안한 집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죄의 용서는 언덕 위의 강도들 틈에서 이루어졌다. 육체의 치유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지만 죄의 용서를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으셔야 했다. 무엇이 더 쉬울까?"(218)

 

 

<하나님, 저도 고치실 수 있나요?>는 특별히 우리에게 치료자로 오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책은 총 4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파에 상한 우리 마음'을 고치신다", "하나님은 '세습에 물든 우리 생각'을 고치신다", "하나님은 '아는 대로 살지 않는 우리 행동'을 고치신다", "하나님은 고침받은 우리를 통해 '아픈 세상'을 고치신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차피 망한 인생이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선 사람에게, 스스로가 부끄러워 움츠려든 사람에게, 수치스러운 기억 때문에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사람에게, 아무런 희망 없이 버려진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 벽을 쌓고 있는 사람에게, 열심히 살아도 기쁨이 없는 사람에게, 가족이 무거운 짐인 사람에게, 집안이 창피한 사람에게, 예수를 만나면 그 인생이 어떻게 역전될 수 있는지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천하의 사기꾼을 믿음의 사람으로 바꾸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지만 우리 하나님께는 하룻밤 일거리에 불과하다"(29).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도, 폭풍을 잠잠케 하실 때도, 나병환자를 치유하실 때도 말 한마디면 충분하셨던 분이, 왜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했을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선포합니다(로마서 5:8).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높은 보좌에 가만히 앉아서 하는 사랑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일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저도 고치실 수 있나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우리가 당하는 고통 때문에 더 고통받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치유와 회복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만남은 단순히 두 종교인의 만남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철학의 충돌이었다. 서로 다른 두 구원관의 충돌이었다"(117).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메시지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율법주의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로부터 시작하여 사도 바울이 평생에 걸쳐 싸웠던 싸움이기도 합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니고데모는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니고데모는 거래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냥 선물이라고 말씀하신다. 니고데모는 사람의 노력으로 구원을 쟁취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구원이란 선물을 그냥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117).

 

<하나님, 저도 고치실 수 있나요?>는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 메시지의 '종합판'과 같은 책입니다. 몇몇 예화들은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낯익는 것입니다. 여러 책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혜(사랑)에 대해 전파해온 그분만의 독특하고 깊이 있는 메시지가 여기에 완결되어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째서 은혜인지, 그 은혜가 어째서 사랑인지를 말입니다.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어찌나 풍성한지, 아무리 넓고 큰 것을 생각해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 책은 우리의 영혼이 그 풍성한 은혜에 완전히 푹 잠기게 만듭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바로 옆에서, 때로는 영혼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가르쳐주는 책은 많지만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책만큼 전적으로, 완전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도 드뭅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안의 '율법주의'가 자꾸만 그 사랑을 축소시키고 한계를 정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도,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들도, 신앙생활에 힘쓰는 성도들도 때로는 그 사랑에 완전히 잠기는 일에 실패합니다. 이 책은 풍성하고 풍성하여, 흘러 넘치고 또 흘러 넘쳐도, 채워지고 또 채워지는 사랑, 그 사랑에로의 초대입니다. 염치 없어 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좌절하지도 말고, 의심하지도 말고, 움츠려들지도 말고 어서 나아오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고통을 치유하는 것은 힘든 일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고통 속에서 그냥 사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치유의 길, 회복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 같은 자도 고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그 완전하신 사랑 안에!

 

 

세상의 모든 구원관이 이 두 구원관 중 하나로 귀결된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두 진영으로 나뉜다. 율법주의 혹은 은혜. 인간 스스로 구원하든가 하나님이 구원하시든가. 행위에 따른 보상으로 구원을 획득하든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따른 선물로 구원을 받든가(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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