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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자유 의지는 없다"는 선언이 몰고올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요? 아마도 인류 최대의 쓰나미가 될 것입니다. <자유 의지는 없다>의 저자 샘 해리스도 지적하듯이 "과학계에서 자유 의지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선언해버린다면, 진화론이라는 주제를 두고 벌어진 논쟁보다 더 치열한 문화 전쟁을 촉발하게 될 것"(7)입니다. 그것은 도덕, 법률, 정치, 종교, 공공정책, 사적인 관계, 죄책감, 개인의 성취 등 "우리가 중요시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건드"립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간 행동에 대한 "처벌", 다시 말해 죄와 책임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저자가 자신의 논지를 시작하며 '극악한 범죄'의 실례를 사용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자유 의지가 없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도덕적으로든 법률적으로든 죄를 저지른 자들은 그저 시간이 잘못 맞춰진 시계에 불과할 테고, 그런 자들을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의라는 관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성경>은 오늘날 '모든' 문제의 '원인'이 인간의 타락(죄)에 있으며, 그것은 '자유 의지'에 기인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자유 의지' 자체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인간은 그 "모든" 책임으로부터 진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유 의지는 없다>는 이 선언은 신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도발로 받아들여집니다.
<자유 의지는 없다>는 부록을 제외하면 1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얇은 책입니다. 그러나 쉽게 읽히지 않는 책입니다. 저자가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독자의 이해력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내용이 어렵다기보다, 짜증날 정도로 '문장' 자체의 명확한 논지가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대가의 책이 제게는 '궤변'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사고와 행동의 주인이라고 느끼거나 그렇게 간주하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만약 사람들이 의식적 선택을 내리기 몇 초 전에 두뇌 스캐너를 통해 그 선택을 미리 감지할 수 있있다면, 사람들은 이내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33).
저자는 "자유 의지란 단연코 환상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12)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철학적 유물론에 근거하지 않고 '과학'(엄밀히 말해서 신경과학)에 근거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논리'는 '과학적'이 아니라, '사변적'입니다. 인간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기 전(7-10초 전),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대한 정보를 두뇌 스캐너를 통해 80퍼선트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면? 저자는 그것을 "우리의 뇌가 우리가 뭘 할지를 이미 결정해 놓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나의 다음 의식적 사고와, 사고 그 자체를 점화하는 최초의 신경생리학적 사건 사이에는 늘 약간의 시간 차가 있다"(17)는 뜻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런 결론을 도출합니다. "나는 어떤 생각이나 의도가 떠오를 때까지는 다음에 무엇을 생각하고 의도할지 결정할 수가 없다. 나의 다음 심리 상태는 어떻게 될까? 나는 모른다. 그저 그렇게 될 뿐이니까. 여기에 무슨 자유가 있는가?"(18)
저자가 주장하는 과학적인 근거는 이것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주장과 근거는 그가 '환경 결정론'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는 의지에 앞선 원인들에 의해 결정되므로 우리는 그 원인들에 책임이 없거나, 그 원인들은 우연의 산물이므로 우리는 그것들에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12). 저자의 이러한 논지는 범죄자에 대해서도 관대한 입장을 갖게 합니다. 어떤 사람을 범죄자로 만든 것은 그의 선택(책임)이 아니라 우연한 환경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나쁜 유전자, 나쁜 부모, 나쁜 환경, 나쁜 생각 등이 일정하게 결합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런 요인들 중에서 정확히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세상의 그 어떤 이도 자신이 물려받은 유전자나 양육된 방식에 책임이 없다. (...) 우리의 사법 제도는 누구든지 아주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만 한다. 실제로 도덕성 자체에 운이 얼마나 크게 개입하는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인 것 같다"(68). 저자는 만일 우리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똑같은 상태에서 똑같은 유전자와 인생 경험 그리고 똑같은 두뇌(또는 영혼)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그가 행동한 그대로 행동했을 터이다. 지적으로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입장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11)고 주장합니다.
<자유 의지는 없다>는 읽으며 가장 큰 혼란을 느낀 것은 도대체 저자는 무엇을 "자유"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저자는 인간에게는 환경을 통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환경은 '주어진' 것이지 우리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니까요. 저자는 인간의 '욕망'에도 같은 관점을 적용합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먹는 것은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강제받는 것이지, 여기 어디에 자유가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욕망에 영향을 줄 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원인이 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자유도 없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주장을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 의지'에 적용한다면, '선악과'라는 환경은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어떤 선택도 이미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고 하는 듯합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의 선택은 이미 자유 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의 환경 결정론적인 논지는 인간이 환경(욕망)까지 통제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유가 없는 것이라는 주장인 듯합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한계'를 거부하는 발언입니다. 그런데 "한계'라는 개념이 없다면 "자유"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저자가 원하는 '자유'는 신이 가진 '자유'의 경지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자유가 없는 것과, (선택에 대한) 자유 의지가 없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요? 한계가 없는 자유는 자유는 이미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계가 없으면 자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없는데 무슨 선택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자는 자유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