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 시 100선 연암서가 고금문총
주희 지음, 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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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曲君看架壑船  셋째 구비에서 그대는 보겠네,

                       산허리에 얹힌 배를,

 

不知停櫂幾何年  알지 못하겠네, 노 쉰 지

                       몇 해나 되었는지를?

 

桑田海水今如許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한 지

                       지금 얼마나 되었는가?

 

泡沫風燈敢自憐  거품같이 사라지고 바람 앞의 등불 같으니

                       어찌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지 않으랴?

 

 

셋째 구비에 들어서면 그대는 바위산 골짜가의 허리에 배처럼 생긴 관이 꽂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배가 그대로 꽂힌 채 얼마나 오랫동안 노를 젓지 않고 쉬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세상이 몇 번이나 바뀌어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된 지 지금까지 그 얼마나 되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 긴 세월에 비하면 우리의 짧은 인생은 그저 잠깐 일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이 된다.

또한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으니, 감히 스스로 가련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249-251)

미국에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신경숙 작가에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첫 대답은 "일단 번역이 되었기 때문에"였습니다. 한국 문학작품 중에 좋은 작품들이 굉장히 많은데 "번역이라는 난관에 처해서 한국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조명을 받을 기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외국 작품을 읽고 감상하는 일에는 '문학적' 수준의 번역 작업이 요청됩니다. 번역의 문제가 가장 큰 장벽으로 와닿는 문학장르는 '시'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수상에 실패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번역의 문제를 제일 과제로 꼽았던 기억이 납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시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더 잘 통할 수 있는 정서를 외국어에 담는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학 작품의 번역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예술(문학) 창작의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한시를 많이 읊어주셨습니다. 휴일이면 함께 등산을 하는 날이 많았고, 산 정상에 오르면 아버지는 이런 저런 시를 멋지게 암송하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멋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셨습니다. <주자 시 100선>에 끌린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자 시 100선>을 처음 대할 때, 이것이 '시'라는 문학 장르이고, 외국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시조들도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고, 그것을 배우고 감상함에 있어 한자를 잘 모른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든지,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와 같이 그렇게 읽고 그렇게 감상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을 뿐입니다. 막상 <주자 시 100선>을 읽어보니 그 시의 맛과 멋을 제대로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한자의 운율이나 리듬에도 독특한 느낌이 있을 터인데 제게 한자는 그저 외국어이고, 눈은 어느새 번역자의 주석을 읽으며 의미를 파악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번역된 시어로는 그 본래의 멋을 알 수 없는 궁색한 실력이지만, 해설처럼 풀어 쓴 글이 있어 읽는 재미는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그것도 '번역된 시'를 읽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나 세월을 넘어, 국경을 넘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있다는 것이 또 새삼 신기합니다.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지혜를 깨닫고 기뻐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친구와 나누는 우정과 학문에 만족함을 느끼고, 그리움에 잠 못드는 밤이 있고, 덧 없는 세월 앞에 한숨 짓고, "한 없이 한가로워 보이는 봄날의 분위기"에 젖어 여유를 만끽하는 시인과 (어설프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주자는 "성리학의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린" 성리학의 대가로 평가되지만, "문학 방면에도 두루 뛰어났"고, "그 중 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약 1,500수의 시 가운데 100수를 엄선한 것이니 관심과 여유를 갖고 읽어볼 만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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