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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논어
허성준 지음 / 스카이출판사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2500년 전의 처세술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에, 더구나 현대 조직사회에서도 여전히 그것이 통한다는 사실에, 새삼 <논어>에 경의를 표한다. <논어>는 어떻게 2500년 동안 계속 읽힐 수 있었는가? 저자는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한다. "사회생활에 대한 의문점에 이처럼 완벽한 해답을 제공하는 책은 수많은 고전 중에서도 드물다. 이것이 <논어>가 2500년 동안 계속 읽히는 이유이다"(8).
한 번은 동료들과 식사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직장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보다 직장 동료들과 먹는 밥의 양이 훨씬 더 많다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관계의 고리 속에서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고, 성공적인 조직생활,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들도 난립한다. 인간관계, 특히 조직(직장)생활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꽤 자신이 있었는데, 일로 만나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 행복한 시간들보다, 도망치고 싶어지는 순간이 훨씬 더 많다. 문제는 내가 이제 어중간한 '상사'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저 뒤에서 적당히 흉이나 보며 내가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것으로 나의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역할은 '그저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관계(의 기술)도 배워야 한다는 것, 그 배움의 필요성을 새삼 절절하게 느끼는 중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논어>를 권하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초역 논어>를 구성했다. 저자는 왜 <논어>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논어>가 어떤 책인지 그 핵심적인 특징을 잘 포착하여 보여준다. 공자가 활약했던 춘추 시대는 "중국 대륙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집락이 '국가'로 발전하는 격변기였다. 국가와 조직의 규모가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지고 다스려야 할 백성도 늘었기 때문에, 통치자들은 효율적인 통치 이론이 필요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춘추 시대에는 다양한 사상가들이 등장했다. 많은 사상가가 권력자에게 등용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공자가 세운 '유가'뿐이다"(8). 또한 "국가에는 집권 체제 아래에서 서로 잘 협력하며 국가를 운명할 수 있는 관료들이 필요했다. <논어>는 이처럼 조직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저술되었다. 그러므로 <논어>에는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조직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언급도 많다"(80). "공자가 살던 시대는 많은 국가가 난립했기 때문에 통솔력이 부족한 군주는 몰락할 수밖에 없는 동란의 시대였다. <논어>는 이러한 군주들을 위한 책이었기에 리더십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공자의 사상이 당시 성립된 200개에 가까운 통치 이론 중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던 이유는 그의 사상이 제일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132). 그의 가르침은 당대뿐 아니라, 2500년이라는 세월을 관통하여 지금까지도 널리 연구되고 읽히고 있으니, 2500년 세월 동안 검증된 셈이다.
<초역 논어>는 "<논어>에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부분을 발췌하여 알기 쉽게 '초역'하고, 오늘날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실례를 들어 해설했다"(8-9). <초역 논어>는 협력, 관계, 무욕, 화합, 부하의 자세, 상사의 자세, 리더의 조건, 배움의 의미, 배움의 방법, 성공의 요소를 주제로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설은 쉽고 간결하다. 아버지에게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들었던 <논어>는 내게 '옛 이야기' 같은 책이었는데, <초역 논어>로 읽으니 <논어>가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된다. 몇 가지 메모를 해둔 가르침이 있는데,
자유가 말하기를, "군주를 섬길 때 말이 잦으면 반드시 욕을 보며, 친구를 사귈 때 말이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 <제4편 이인>
"너무 많은 관심, 조언, 충고 등은 때로는 인간관계에 있어 독이 된다"는 것이다(53).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의 의(義)를 깨달았고 소인은 이(利)를 깨달았다." <제4편 이인>
저자는 제너럴모터스의 사례를 들어 이렇게 풀이한다. '미국의 자존심'이라고까지 불렸던 제러럴모터스의 도산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 제너럴모터스의 부활을 이끈 사람은 밥 루츠 부회장인데, 그는 제러럴모터스의 주가가 폭락한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숫자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최고의 차를 만드는 전문가를 조직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위기가 찾아왔어요.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봉사해야 할 기업이 가격 절감과 영업 이익을 높이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61). 책으로 읽을 때는 모두 이러한 가르침을 긍정하겠지만,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이러한 어리석음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풍조가 안타까울 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자기의 능력 없음을 근심하라." <제14편 헌문>
저자는 발명한 에디슨의 말로 이 구절을 풀이한다. "바쁘게 움직인다고 해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의 목적은 결과를 창출하고 실제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 조사, 계획을 통해 고안한 방법, 정보, 명확한 목표,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다"(105).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후배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조언 중 하나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싸우게 하면 그것을 버리고자 함이다" <제13편 자로>
"교육과 학습은 공자가 언제나 통치의 기본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127). 사실 많은 곳에서 인재 양성의 중용성과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준비된 사람'을 원하지 사람을 키우려고 하는 조직이 드물다.
인의 정신을 갖춘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능력을 키워준 뒤에 자신의 능력을 키운다. 이처럼 자신의 처지에서 남의 처지를 유추하고 이해하는 것이 인의 올바른 방향이라 하겠다.
(대체로 인자는 자기가 나서고 싶으면 남을 내세우고, 자기가 발전하고 싶으면 남을 발전시킨다. 가까이 있는 것에서 남을 이해한다. 이것이 인이 가야 할 방향이라 하겠다.) <제6편 옹야>
저자는 "자기 생각에 망설임이 없고(충) 타인에게 공감하는(서) 것, 이 두 가지가 공자의 핵심적인 가르침"(41)이라고 한다. 지당하신 말씀이고, 옳은 말씀이지만, 실제 생활에 적용해보면 참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다시 읽어보자. "인의 정신을 갖춘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키워준 뒤에 자신의 능력을 키운다"고 하는데, 이런 자세로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기는 해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물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머리로는 들어가는데 실천으로는 글쎄, 모르겠다.
<초역 논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고전이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책이다. 그만큼 쉽게 읽힌다. 그러나 그 간결하고 단순해 보이는 가르침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우리가 머리로 끄덕이는 것과 실제 삶(태도)과의 거리가 얼마나 아득하게 먼지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조직생활이 힘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