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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다리 1
줄리 오린저 지음, 박아람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언드러시가 가장 경악한 것은 엄청난 규모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작은 것들이 괴로움을 안겨 준다는 사실, 아주 작은 것들이 일상생활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토대가 된다는 사실이었다"(416).
요즘 유명 연예인들이 TV에 나와 자살에 대한 유혹이 어떻게 찾아왔는지,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털어놓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율을 보면, 우리 사회가 자살을 권하고 있다는 끔찍한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감지되는 또 하나의 불행한 기운은 가족이 점점 짐스럽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시월드'라는 공격적인 말이 유행하고, 드라마마다 가족과의 전쟁이 한창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다리>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어느 과거에,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 던져진 인생들, 자살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고통들, 그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의 전부가 되어 주었던 가족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언드러시는 헝가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대인입니다. 가난하지만 자존심을 세울 줄 알았고, 가진 거라곤 무모한 희망뿐이었지만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다리>는 언드러시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기 전날 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프랑스로 건너가 건축학을 공부하게 되는 과정, 그곳에서 만난 스승과 친구들, 그리고 좌절과 도전을 반복해가는 어느 젊은 날에 뜻밖에도 "파도가 끌어당길 때의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힘"으로 "그를 강렬하게 끌어당겼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1권, 323) 그의 인생에 찾아든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1권). 그러나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사랑은, 꿈꾸대는 대로, 계획한 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공포와 비극 속으로 몰아넣었던 세계 2차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입니다(2권).
<보이지 않는 다리>는 전쟁터의 악취와 선혈을 이야기하기 전에 청년 언드러시의 꿈과 사랑과 고뇌를 아주 긴 호흡으로 정밀하게 보여줍니다(1권). 전쟁이 그에게 앗아간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짓밟힌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다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비극이겠지만, 언드러시에게는 그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이 '더' 문제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대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봅니다. 언드러시는 유대교회당에 앉아 기도문을 노래하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형제가 함께 앉아 있음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 폴라네르는 크라쿠프에서, 언드러시는 코냐르에서 이 멜로디를 배웠다. 기도문 독창자는 소련 민스크에서 할아버지에게 배웠다. 풀로네르 옆에 서 있는 노인 셋은 각각 풀란드 그디니아와 암스테르담, 프라하에서 배웠다"(346). 집 없는 사람처럼 세계를 떠돌며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이 독특한 민족의 기구한 운명과 고독한 싸움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언드러시가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구 멘델과 함께 신문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전쟁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해 아들에게 전쟁을 놀이처럼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그것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전해주는 새로운 감동, 새로운 전율이 있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본 것은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와 살아온 날들, 살아갈 날들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진실한 사랑과 소박한 열정과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거짓 없는 웃음이 주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그런 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언드러시는 그가 만든 신문을 읽고 다시 웃기 시작하는 대원들을 보며 다시 살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대원들이 신문을 읽고 얘기를 나누며 웃기 시작하자, 언드러시는 약에 취해 오랫동안 잠을 자다 깨어난 기분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나약했다는 사실이, 끔찍한 생각에 압도되어 공허감에 빠지도록 기꺼이 자신을 방치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이제 그는 매일 그림을 그렸다. 볼품없는 스케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에게 산소를 공급해주었다. 숨을 쉬려는 노력을 가치 있게 해주었다"(2권, 47).
이 책의 역자는 후기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처음에는 여느 청춘처럼 고뇌함으로써 힘들었지만, 그다음에는 고뇌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들었고 고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힘들었다"(2권, 492). 누군가는 지금 배신하고 떠나간 사랑 때문에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괴로워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좌절된 꿈을 껴안고 목적지도 없는 차가운 거리를 걷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생의 절망 앞에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인생에게는 그것조차 사치일 수 있고,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에 푹 빠져 보냈고, 책을 손에서 놓은 지금, 머릿속이 마비된 것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헝가리'를 조국으로 가진 한 유대인 청년의 삶과 사랑과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극동의 조그만 땅에서도 역사의 비극은 아로새겨지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기억해낼 뿐입니다. 어떻게 이 아픈 역사를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며 읽었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평범해서 더 싫었던 나의 '오늘', 그 하루의 삶에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다시 해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언드러시를 보며 내가 얼마나 안도했는지를 기억하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