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먼 길
캐런 매퀘스천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느 늦은 밤, 무작정 밤거리를 걸어다닌 적이 있습니다. 몸과 함께 마음도 지치도록 무장적 걷는 것, 그거라도 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거리의 소음에 섞여 들며 다들 나를 모른 채 해주길 바랬지만, 내 마음 안의 아우성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는 데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더 슬펐습니다. 누가 날 좀 도와줄 수 없을까? 누가 나를 이 상황에서 꺼집어내줄 수 없을까? 멀리 보이는 붉은 십자가 불빛을 향해 반항하듯 물었습니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느냐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도저히 내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다고 완전히 항복할 때, 비로서 구원자를 찾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집으로 가는 먼 길>에는 삶이 정체되어 있는 세 여성이 등장합니다. 마니는 남자 친구의 죽음 이후 장의사의 권유로 슬픔 치유 모임에 나가고 있습니다. 죽은 남자 친구에 대한 상실감이 아니라 그의 아들, 그녀가 십 년 동안 키워왔던 트로이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 그녀를 무기력하게 합니다. 리타는 죽은 딸아이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딸아이의 남자 친구가 딸 멀린다는 살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 슬픔 치유 모임에 모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활력 넘치는 재지라는 아가씨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죽은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심령술사입니다. 재지는 어떤 영혼의 목소리에 이끌려 슬픔 치유 모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재지는 마니가 트로이를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합니다.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마니와 함께 위스콘신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자동차 여행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이 여행에 리타가 기꺼이 동행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재지는 이 자동차 여행에 한 사람을 더 끌어들입니다. 라번은 마니와 같은 집에 사는 집주인이지만, 한 번도 마니와 부딪힌 일이 없습니다. 집 안에서 홀로 은둔자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지는 라번도 이 여행에 동행해야 한다고 우깁니다. 영혼의 목소리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자동차 여행은 타인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조금 내어준" 여행입니다. 트로이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절박한 마니. 그러나 마니는 폭풍우가 쏟아지는 밤거리에 기름이 떨어진 채 방치된 자동차처럼, 제 힘으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마니에게 재지와 리타가 손을 내밀어줍니다. "5분 전만 해도 옴짝달싹 못하는 거대한 쇳덩이에 불과했던 자동차가 작은 배터리 하나 갈아 끼웠을 뿐인데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한 사람이 나서서 도와준 덕분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34).

 

그런데 마니와 리타는 이 여행에 라번이 끼어드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목적이 있었고, 라번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빨간 머리 앤이 매튜 아저씨의 집에 처음 오던 날, 마릴라 아주머니는 당황합니다. 그들에게는 일을 거둘어줄 사내아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마밀라 아주머니는 앤이 그 집에서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매튜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 애에게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지"라고요. 세상이 각박하다고 한탄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필요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도움이 절실한 마니는 라번에게 필요한 도움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그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짐스러워 보이기만 하는 라번 또한 자신을 다른 방법으로 도울 수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라번에게 재지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자라면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친구들과 자동차 여행을 가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라번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바로 그 짧은 순간,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131). 이제는 그야말로 삶의 끄트머리에 와 있고 지금 모험을 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 라번은 용기를 내어 재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라번이 설명하지 않았고 또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일이 완벽하게 때를 맞추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고독의 시간을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은 바로 그날 재지가 라번의 집 앞에 나타났고, 라번이 늘 가고 싶어 했던 곳, 바로 라스베이거스로의 여행에 그녀를 초대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131) 재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마니가 자신의 삶을 조금 내어준다면 베너 부인의 외로움이 덜어질 수도 있을"(37)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여행은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꿀 거예요."

 

<집으로 가는 먼 길>의 자동차 여행은 델마와 루이스의 그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모험과 불안과 사건을 향해 질주하는 여행이 아닙니다. 신비로운 기운과 사랑의 힘이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재지, 미니, 리타, 라번)을 감싸안습니다. "함께"하는 여행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여행의 맛은 예상하지 못한 사건 속에 있다는 것에 공감하게 되는 부드러운 소설입니다. 누군가에게 내 삶의 한 자락을 내어주는 것, 구원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는 것을 뜨끈하게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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