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해부도감 - 집짓기의 철학을 담고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주는 따뜻한 건축책 해부도감 시리즈
마스다 스스무 지음, 김준균 옮김 / 더숲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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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공간 해부

 

 

어릴 때부터 혼자 즐겨했던 놀이가 있습니다. 노트 위에 사각형 공간을 그려놓고 내 방을 꾸며보는 것입니다. 먼저 창문과 문을 그려넣고,

침대는 어디에 놓을까, 책상은 창을 마주 볼까, 창을 등질까, 창 옆으로 할까, 옷장은 어느 정도 크기로 할까, 한 쪽 벽면을 책꽂이로 만들려면 방은 얼마나 커야 할까, 방 한 가운데 테이블을 놓을까 말까.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행복한 공상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언제가부터는 비슷한 가구를, 늘 비슷하게 배치하게 되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주거해부도감>은 그런 저만의 놀이에 전문지식을 더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원래 "주택 설계를 배우는 건축학과 학생들을 위해 기획한 책"이라고 합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저지르는 설계상의 초보적인 실수를 열거한 뒤, 주의를 주는" 교과서를 만들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설계 전문가로서 이제 막 실무를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앞으로 집을 지으려고 하는 일반인들도 이 정도의 지식은 알아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궤도를 수정하여 지금의 책을 내놓았다고 고백합니다(5).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올라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공부는 기초를 잘 쌓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거해부도감>은 주택 설계의 기초를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그러나 그 기초가 주택 설계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주택 설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주택 설계의 개념과 이론이 많은 일러스트와 함께 설명되어 있어 아기자기 하면서도, '전문 서적'의 향기가 진하게 납니다!

 

요즘 어떤 사람을 칭찬하거나 비판하려고 할 때, "저 사람 개념 있다", "개념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떤 분야를 정복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개념을 잡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거해부도감>은 주택 설계에 있어 바로 그 '개념'을 잡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저도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위층 바닥을 떼어내 한 칸씩 발판을 만들면 그것이 계단이라는 것, 그리하여 계단의 본질은 올라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려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부엌과 나이닝룸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선, 무엇을 CUT 하고 무엇을 GET 할 것인가, 처마가 가진 햇볕 조절 효과, 일곱 가지 창문의 형태 등, 설계에 필요한 개념들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기분입니다.

 

<주거해부도감>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집의 모든 공간과 배치에는 그 나름대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선, 계단의 위치, 지붕의 각도, 문의 형태, 창문의 방향, 조리대의 높이, 천장의 높이 등 모두 자기만의 '이유'를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고, 그 이유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바로 주택 설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스승들로부터 이런 교훈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비교적 빨리 평범한 설계안을 가지고 시작하라"(89). "주택의 세부 설계 중에는 머리를 쥐어짜낸 끝에 탄생하는 발상과 기술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만큼이나 '평범한 기술'도 소중한 것이다"(153). 제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은 겨울이면 난방이 잘 되지 않아 고생을 합니다. AS를 신청할 때마다,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매번 똑같습니다.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 되었다." 주택 설계도 창의적인 작업이라 설계를 하는 전문가들이나 자기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이나 '독특함'에 더 큰 무게와  중요성을 부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성 강한 집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주거해부도감>을 보고 나니, 진짜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한 설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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