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담요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괴물같은 책이다. 장난 삼아 친구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 봤다가 깜짝 놀랄 만한 비밀을 알게 된 그런 충격!
"미국의 천재 그래픽 노블 작가"라는 타이틀이 있어 "그래픽 노블"이란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백과사전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만화책의 한 형태로, 보통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단편 만화의 앤솔로지를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픽 노블은 대체로 보통의 만화 잡지보다 튼튼하게 제본되어 있으며, 인쇄 도서와 같은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고, 가판대보다는 서점이나 만화 가게 등지에서 찾을 수 있다"(위키백과).
<담요>는 벽돌보다 큰 책의 크기도 그렇고(592쪽), 가격도 독자를 압도한다. 이 가격에 이 만한 크기의 만화책을 선뜻 사서 볼 용기 있는 독자가 있을까 싶을 만큼 위용이 느껴진다. 그런데 만화책을 읽었다는 느낌보다 영화를 한 편 본 듯, 소설을 한 권 읽은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이 책이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구나 싶다.
<담요>는 작가의 성장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전적인 고백이다. 그런데 너무 솔직해서 징그럽다고나 할까. 위스콘신의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엄격한 기독교주의 가정에서 성장하며 만화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한 사람의 성장기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솔직히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때문에 부풀어올랐던 기대에 비하면 그림은 투박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그 거친 선들 속에 표현되는 감성은 지독하리만치 리얼해서 그 어떤 문장보다 날카롭게 빛난다.
<담요>의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한 침대에서 자는 동생과 장난을 치다 아빠에게 벌받는 이야기에서는 작가가 아니라 내가 죄책감을 고백하게 된다.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 어린 인격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는 매정한 선생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던 베이비시어터의 끔찍한 성추행,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매일 밤 꿈속으로 달아나는 주인공은 그저 덤덤하게 이렇게 말할 뿐이다. "어린애인 내 눈에 비친 삶은 이미 너무나 끔찍했기에, 난 틈만 나면 좀 더 살기 편한 곳으로 도망가는 꿈을 꾸었다"(38). 제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어린이에게 끔찍한 삶이란 공포 그 자체이다. 돌이켜 보면, 희망만이 가득하고 푸르게만 자랐었어야 할 내 어린 시절도 세상과 치고받느라 이런 저런 멍이 들어 있다. 그때는 노련하지 못해서 작은 공격도 큰 상처로 남았나 보다.
기독교 '교리'와 세속(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온몸을 움츠려들게 하는 가난, 패배의식에 쩌든 청소년기, 그 속에 한 줄기 빛처럼 주인공을 찾아온 것은 열병 같은 사랑이었다. 오직 그녀와 함께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할 이유도 없었던 첫 사랑. 그 사랑이 주인공에게 선물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 <담요>이다. "레이나가 준 담요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위안이 되었지만" 어느 새 그 시간도 지나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삶은 계속된다.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또 걸어가고 있는 삶의 발자취를 따라 밟으며, 내가 걸어온 길을 그 위에 살짝 포개어본다. 세상의 폭력에 무기력하게 얻어 터지기도 하고, 열병 같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어보기도 하고,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에 모든 것을 내던지기도 하고, 불안한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고, 흘러가는 풍조에 휩쓸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가 보다. 어느 시절 한 때 내 마음을 덮어 주었던 나만의 '담요'를 작가처럼 덤덤히 추억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말이다. 삶은 그렇게 계속 된다.
<담요>는 지나온 어느 시절, 몹시도 춥고 외로웠던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나만의 담요는 무엇이었는지'를 추억하게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그런 담요가 되어 준다. 문학이 주는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