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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시대가 만든 운명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시대마다 인물에 목말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연과 인간 사회에 모두 통용되는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법칙입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게 사는 이치이지"라고 관조하며, 힘 없는 백성들은 언제나 짓밟히고 당하며 살아야 할까요?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 생명의 과제이고 운명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시대마다 인물에 목마른 이유는, 가만 두면 언제나 힘(폭력)에 의해 다스려지기 마련인 세상에 평화와 공존과 나눔과 균형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현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는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약자의 편에 선 인물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지 말입니다.
나라의 리더를 두고 온 국민이 고민하는 이 때에 딱 이런 인물만 같으면 좋겠다는 하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정조이고, 또 한 사람은 정약용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지만, 정약용은 정조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부친이 겨우 음직으로 지방관을 역임한 그는 부형의 음덕을 입을 수 없었고, 실세한 남인 가문의 후예로서 뚜렷한 스승이나 친구도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은 오직 자신의 재능이었고, 이를 알아주는 정조의 눈이었다"(295).
아버지 정재원은 정약용에게 귀농이란 아명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당쟁에서 벗어나 농촌에 귀의하라는 의미"(46)였습니다. 그러나 "탄생부터 좋든 싫든 당쟁의 비극에 연루된" 정약용의 운명은 귀농으로 끝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신하가 저군을 죽이는 불충의 시대, 장인이 사위를 죽이는 불륜의 시대, 부인이 남편을 죽이는 부정의 시대"가 그를 끌어내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세자의 훙서 직후 태어난 정약용과 세자를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빌었던 세손 정조의 만남은 그래서 '시대가 만든 운명'이었다"(47)라고요.
전심으로 백성을 위하고자 했던 두 천재적인 인물은 시대의 축복이었지만, 조선은 그 축복을 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양반 사대부의 기득권 지키기를 당론"으로 삼은 노론, 그들의 탐욕은 먹이를 움켜줜 독수리의 발톱처럼, 깊이 뻗어있는 노송의 뿌리처럼 사납고 강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정약용의 운명을 뒤틀리게 만든 것은 '천주교'라는 큰 물줄기였습니다. 세계 교회사에서 조선은 매우 특별한 국가입니다. 정약용의 형 정약종과 함께 이 땅에 순교의 피를 흘린 이승훈은 세계 천주교 사상 자청해서 영세를 받은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무슨 얄궃은 운명인지, 천주교는 그것을 반대한 노론에게 오히려 정치적인 '힘'을 보태주고 말았습니다.
저자는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이 민감한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한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정리합니다. 첫째는, 조선 성리학의 교조화입니다. 노론은 일당독재를 계속하면서 성리학 이외의 모든 사상체계를 사문난적으로 몰았습니다. 둘째는, 천주교를 신봉한 양반 대다수가 남인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남인들을 중용하려 하자 노론은 천주교를 빌미로 남인들을 실각시키려 했습니다. 셋째는, 당시 교황청의 경직된 교리 해석과 그 기계적 강요입니다. 특히 제사와 장례 문지에 대한 교황청의 경직된 해석과 강요는 노론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조선인들에게 거부감을 주었습니다(120). 만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천주교를 몰랐다면 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망하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결말처럼, 조선의 운명은 정조와 정약용의 힘으로 돌이키기에는 이미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약용이 곡산부사에 임용된 때의 일입니다. 관리들의 무능과 아전들의 농간으로 세금에 짓눌려 있던 억울한 백성들이 '이계심'이라는 자를 필두로 관아에 호소를 하였습니다. 이 일로 이계심은 소요를 일으킨 주동자로 몰려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도, 사대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계심을 잡아 사형시킴으로 기강을 바로 잡으려고 혈안이었습니다. 이러한 때, 신임 부사로 임용된 정약용은 "조정 대신들이 때려죽이라고 주문한 이계심"을 무죄 석방했습니다.
"한 고을에 모름지기 너 같은 사람이 있어서 형벌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백성을 위해 그들의 어려움을 대신 호소했구나. 천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너 같은 사람은 얻기가 어렵다. 오늘 너를 무죄로 석방하겠다"(308-309).
"천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너 같은 사람은 얻기가 어렵다"는 이 한마디가 정약용 같은 인물에 목마른 우리의 한탄이 아닐까 합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잘못된 역사는 계속 되풀이 될 것입니다. 얼마전, 김훈의 소설 <흑산>을 읽었습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정조와 함께 천주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소설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빼어남이 마음에 와닿으면 닿을수록 그래서 더 안타까워지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하지만 인물이 시대를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보면 잘못된 시대가 인물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줍니다. 그 시대를 서러워하지만 시대가 어두울수록 인물은 더욱 빛이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다산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개정 증보판'입니다. 알수록 그 빼어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 빼어남에 마음을 빼앗길수록 더욱 안타까워지는, 우리의 인물이요, 우리의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