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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미술에 홀리다 - 미술사학자와 함께 떠나는 인도 미술 순례 ㅣ 처음 여는 미술관 1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2년 9월
평점 :
미술에 홀린 인도를 만나다
인도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바알과 아세라 종교의 흔적이 인도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입니다. <인도 미술에 홀리다>에 그와 관련된 직접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관련 지식이 풍부했다면 그 흔적을 이 책에서 발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 미술에 홀리다>는 한 분야를 집중 조명하지 않고, 인도 미술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하나의 미술관으로 표현한다면, 전체를 다 돌고난 뒤의 인상은 한마디로 "천진함"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인도 미술을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니, 이것이 그들의 첫인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인도하면 이제 신의 세계, 색의 세계, 예술의 세계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듯한데, 그 세 가지 세계가 모두 천진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사람의 형상뿐 아니라, 태양, 코끼리, 원숭이, 황소 등 다양한 동물들의 형상으로도 표현되는 신의 모습은 장엄하고 근엄하기보다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옷감이고, 집이고, 장식품이고, 형형색색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도의 색들은 유치할 정도로 현란합니다. "선택된 캔버스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현대적인 재료나 기법에 의존하지 않는"(11) 인도의 미술은 땅의 백성들의 삶에 맞닿아 있어 서양의 그것과는 대조적일 만큼 경쾌합니다. 미술을 특별한 사람들이 즐기는 고상한 그 무엇으로 구별짓지 않는 인도인들에게 미술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와 같았습니다. 인도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것이 미술로 표현될 수 있다"(13)고 할 만큼 일상의 모든 공간, 모든 요소들이 미술의 주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장식 본능이 뛰어나다. 무엇이든 장식하거나 꾸미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아무리 가난한 시골집이라도 흙담에 문양을 그려 넣거나 채색을 해서 활기를 불어넣는다. 집에서 키우는 소에게도 장식과 치장을 해준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미의식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서 즐거운 일일 뿐이다"(171).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신과 신화를 가진 나라이지만, 그들의 미술은 (종교적) 성스러움보다는 인간적인 욕망과 애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종교적 신념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들의 미술을 보면 그들의 중심은 신에게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가르치고 죽음을 일상과 분리하지 않고 가까이에 두는 인도들이기에, 그들의 삶을 다양한 문양과 다양한 색상으로 화려하게 물들이는 모습이 더 강렬하게 와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인들의 미의식은 삶의 구석구석을 물들이고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입는 옷감은 신분을 구별하기도 하지만, 감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흰색은 브라만 계층의 색으로 순수와 동시에 슬픔을 상징하고" "붉은색은 크랴트리아나 계층의 전사나 왕의 색으로 용맹의 상징이자 다산과 성적 에너지를 상징"하고, "힌두교도들에게 검은색은 슬픔과 나쁜 징조를 나타내는 불길한 색이었다"고 합니다(124). 민속 목공예의 전통이 잘 표현된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기도 합니다(152-153).
<인도 미술에 홀리다>는 사진 자료가 많아 인도 미술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접근하기 쉬운 책입니다. 글도 쉽고 정감있게 써 있습니다. 침을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처럼, 인도 미술에 완전히(?) 홀린 저자의 애정이 얼마나 각별한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인도 미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몰리기도 합니다. 재미없는 책은 아니지만, 아직은 인도 미술에 홀렸다기보다 미술에 홀린 인도를 만났고, 그런 인도에 홀린 한 분을 알게 된 정도인 것이 살짝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이만하면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