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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속 역사 읽기
플라비우 페브라로.부르크하르트 슈베제 지음, 안혜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9월
평점 :
"이 책은 예술과 역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망함으로써 예술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서로 다른 형식으로 말하거나 재해석했는지를 반복해 논증할 것이다"(9).
우리는 주로 역사를 말과 글로 배우지만, 어떤 역사들은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줄 때가 있습니다. 말로 배우는 역사의 비극보다 아버지를 잃은 어린 아들의 무표정이나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담은 한 장의 그림이 더 절절하게 우리 가슴을 울리고, 전쟁의 어떠함을 말해주는 현란한 숫자보다 널부러진 시체 더미의 침묵이 그 참상을 더 간명하게 전달해주기도 합니다.
<세계 명화 속 역사 읽기>는 역사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해보려는 시도입니다. "기원전 1792년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석비에서부터 "2001년 9/11 테러"를 그린 잭 휘튼의 작품까지 굵직한 세계사를 통크게 훑었습니다. 저자는 "일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예술적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 책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세계사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더라도 미술사에서 명작이 탄생하는 데 영감을 주었던 사건들은 이 책에 포함시켰다"고 밝힙니다(8). 그리고 그 좋은 예가 15세기 우첼로가 그린 <산로마노전투>라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책을 빠르게 훑어보니 세계 명화에 담긴 세계사는 전쟁, 정복, 혁명으로 점철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앞쪽의 그림이 대부분 전쟁의 승리와 정복을 찬양하는 그림들이라면, 후반부로 갈수록 전쟁의 참상이나 잔혹함을 고발하는 그림이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서문을 잘 읽어보면, 아마도 그 갈림길이 되는 사건은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전쟁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18세기까지는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는 일이 예술가와 후원자 사이의 돈독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전쟁은 호전적인 예술(예술가가 원하는 쪽으로 사회나 정치가 변화하는 것을 미화해 표현)의 시대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8).
"예술과 역사적 사건은 언제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예술은 때로 권력을 이상화하고 찬양하는 수단으로서 역사(이야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역사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고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인류가 겪은 일상사에 대해 증언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깨달아집니다.
<세계 명화 속 역사 읽기>는 "예술과 역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망함으로써 예술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서로 다른 형식으로 말하거나 재해석했는지를 반복해 논증할 것이다"(9)고 기획 의도를 밝힙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설명 외에 그 논증이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여기에 실린 그림들은 역사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들입니다. 명화를 통해 역사를 읽고 배운다는 시도가 신선했고, (충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림에 표현된 작가의 의도가 어떤 역사적 해석을 담고 있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교과 과목으로 배울 때는 지루하기만 했던 세계사가 세계적인 명화 속에서 입체감을 가지고 되살아 납니다. 명화나 역사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놀이 삼아 천천히 감상을 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잊혀질 만큼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화가들이 기술적으로 그림만 잘 그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