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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닮은 집, 삶을 담은 집 - 현실을 담고 ‘사는 맛’을 돋워주는 19개의 집 건축 이야기
김미리.박세미.채민기 지음 / 더숲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건축주에게 "어떤 집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선뜻 돌아오는 대답이 "멋진 집"이랍니다. 그런데 "어떤 멋진 집을 원하느냐"고 되물으면 건축주의 말문이 막힌답니다. 자신이 원하는 집에 대한 구체적인 상이 없다는 거지요. (서문 中에서)
"내가 커서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짓고 싶었습니다. "울도 담도 쌓지 않은 그림 같은 집" 말이죠. 또 "내가 커서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잘 꾸밀 자신도 있었습니다. "넓은 뜰엔 꽃을 심고 고기도 기를 수 있는" 그런 집으로 말이죠. 그런데 현실은 참 팍팍하기 그지 없네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그야말로 '집장사'를 위해 지은 집입니다. 비슷한 크기, 비슷한 모양으로 지은 원룸형 공동주택입니다. 젊은 시절 건축사업을 좀 하신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순전히 '집장사'를 목적으로 날림으로 지은 흔적이 곳곳에 보인답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나만의 공간으로 작은 땅 한 평 소유할 수 없고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꾸밀 수 없는 형편을 생각하면 혼자 처량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쁜 집, 공간이 살아 있는 집, 개성이 있는 집을 보면 저절로 눈이 가고, 마음이 가고, 손이 갑니다.
<삶을 닮은 집, 삶을 담은 집>에도 그렇게 저절로 손이 갔습니다. <집이 변한다>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된 글을 책으로 모은 것이라는데, 실려 있는 사진만으로도 "우와", "우와" 감탄이 흘러나왔고, "팔자 좋은 사람들 이야기지" 하는 괜한 투정도 흘렀습니다. 여기에 담긴 19개의 건축 이야기는 모두 자신의 '삶'에 맞는 '집'을 맞춤형으로 지은 것입니다. 땅에 모양에 맞춰 오각형의 땅에 오각형집을 짓고, 삼격형 땅에는 삼각형집을 짓고, 몸이 불편하여 외출을 꺼리시는 아버지를 위해 통유리로 속이 훤히 보이도록 지은 집도 있고, 고정관념을 깨는 멋진 다가구, 다세대주택의 완성도 높은 건축 이야기도 있고,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처럼 지은 집 이야기도 있고, 거주자의 의지에 따라 쓰임이 바뀌는 "기분 좋은 불편함이 스며 있는" 전원주택 이야기도 습니다. 수록된 사진과 도면을 볼수록 집의 내부를 더 엿보고 싶은 아쉬움이 커집니다. (그러나 사적인 공간을 이 이상 공개하기도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결국 <삶을 닮은 집, 삶을 담은 집>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집은 곧 삶이라는 것, 집을 짓는 일은 삶을 디자인 하는 일이라는 것, 그것을 깨우쳐 주고 싶은 듯합니다. "이 책이 집을 사는(買) 것'에서 '사는(住) 곳'으로 바꾸는 하나의 디딤돌이 됐으면 합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조용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멋진 집'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멋진 집'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닮은 집, 삶을 담은 집>은 바로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사람의 멋진 집'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보다, '나만의 삶을 담은 집'은 어떻게 꾸며질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도', '도', '도' 하나의 소리만 내는 지루한 노래처럼, 멋대가리 없는 집들. 그 속에 저마다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개성 있는 집들이 하나 둘 지어져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우리 삶에 즐거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삶을 닮은 집, 삶을 담은 집>은 집에 대한 가치를 엉뚱한 데서 찾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톡톡톡 두드리는 즐거운 자극입니다. 가고 싶지만 길을 찾지 못해 막연한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줍니다. 삶은 담은 집, 부디 내 삶에도 그런 행운이 깃들여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즐거운 상상을 계속 해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