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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해방 - 개정완역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개고기를 먹는 야만국이라고 우리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다. 난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화가 났다. 그래, 애완견을 식용하는 것이 야만적이라고 치자. 그러면 맛있는 송아지 고기를 먹기 위해, 오로지 '맛있게 먹기 위해', 송아지를 평생(!) 감금하는 것은 어떤가. 송아지가 뛰어놀면 고기를 질기게 만드는 근육이 발달하고 칼로리가 소모되니 송아지를 좁은 우리 안에 가둬놓고, 우리 안을 한 바퀴 도는 경우를 막기 위해 목에 쇠사슬을 채워둔다. 게다가 풀을 먹으면 고기가 갖는 연한 색깔을 잃게 된다는 이유로 지푸라기나 깔짚조차 깔아주지 않는다. 송아지는 성장 촉진제가 첨가된 사료로만 사육된다. 송아지는 "오직 도축될 때에만 우리를 벗어날 수 있다"(231-232). 단순히 인간의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은 평생(!)을 계속 고통받으며 살아야 한다!!! (방향이 틀렸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우리나라의 보신탕 문화를 그렇게 욕했던 사람들에게, 실험에 이용되는 개가 처한 상황에는 관심이 없는지 묻고 싶다.
<동물 해방>은 "우리가 어떻게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대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하며, 우리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집단을 희생하는 "종차별주의"를 꼬집는다. 인간 평등의 논리를 확장하여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논하며, 잔혹하게 행해지는 동물실험을 비판하고, 집약적 축산의 실태를 고발하고,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 종차별주의의 역사와 철학까지 광범위하게 논의한다. 사실 그 광범위함이 책의 수준을 확 높여놓았지만, 그 때문에 책의 재미가 반감되는 면도 없지 않다. 어렵기 때문이다.
1975년에 출간된 책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은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폭정에 대해, (아마도 처음으로) 사회적인 노여움과 분노를 유발한 '동물 해방 운동의 바이블'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집약적 축산의 실태고발인데, 아무 생각없이 즐겼던 육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살아 있는 동물 학대에 대해 무지하다. 가게나 식당에서 식품을 사거나 먹는 것은 오랜 학대 과정의 종착점이다. 최종 제품 외의 나머지 과정은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다"(174). 어릴 때,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닭집에서 닭을 잡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엄마가 고른 닭이 목이 비틀리고, 뜨거운 물에 데쳐져 털이 뽑혀 나가는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한 그날, 나는 닭고기를 먹지 못했다. 회를 즐겨 먹었던 내가 접시 위에 눈을 껌벅이고 있는 생선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던 기억도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마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포장육만 보아온 사람은 "살아 숨쉬고, 걸어 다니며, 고통 받는 동물이 쉽게 연상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 보다>의 저자는 이 문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요즘 아이들은 닭은 몰라도 치킨은 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동물 해방>은 말한다. "만약 우리 손으로 먹을 동물을 직접 죽여야 한다면 우리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264).
"우리는 인간에게 가해졌다면 분노를 느꼈을 잔혹 행위가 다른 종 구성원들에게 가해질 경우에는 입을 다문다"(133).
이 책은 우리에게 채식을 권하지만, 그래서 나도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급적 육식을 줄이고 채식 위주의 식급관을 가져야겠다 결심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을 권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지금도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동물 실험과 집약적 축산의 형태에 대해서는 한 번쯤 진지하게 반성해보자고 외치고 싶다. 문제의 핵심은, 많은 동물들이 순전히 "상업적 목적"으로 실험에 이용되고 있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생산"을 위해, 한마디로 수지 맞는 장사를 위해 잔혹하게 사육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먹이를 사냥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2009년판 서문을 보면, 지금도 대규모의 제도화된 동물 학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75년에 이 책이 출판된 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동물들에 대한 잔혹 행위를 금하는 법안이 통과되기 시작한 것은 대부분 2000년에 들어선 이후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맛 좋은 고기를 싼 값에 생산해야 하는 대규모 농장이나 기업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식습관을 쉽게 바꿀 수 없는 소비자에게도 맛 좋은 고기를 싼 값에 쉽게 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달가운 소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미약한 공감 능력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동물들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려오는데 어떻게 귀를 막고 그냥 살아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