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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존 도커 지음, 신예경 옮김 / 알마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제노사이드(genocide), 특정 집단을 완전히 없앨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집단 학살하는 행위(8).
인간 이성이 밝아져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고, 과학이 주도하는 현련한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 사회에 왜 아직도 이처럼 잔혹한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동물의 세계"를 TV로 시청하는 것보다 더 놀랍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인간의 폭력이 역사이며,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폭력성의 단면들이다.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의 저자 존 도커는 이러한 폭력이 인간사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라고 말한다. 인간이 역사는 폭력으로 물든 역사이며,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앞으로도 잔혹한 폭력의 역사는 계속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은 이렇게 인간사에 자행되고 있는 폭력 현상을 규명해보고자 하는데, 개인 간의 사적인 폭력이 아니라, 집단 간의 폭력을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존 도커의 이러한 연구 성향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미국의 법학자이자 역사가인 라파엘 렘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렘킨은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학자로 제노사이드 연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존 도커의 연구가 가진 차별점은 인간사에 드러나는 인간사의 집단 폭력 현상을 "역사를 충분히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 보았다는 것이다(9). 저자는 폭력사를 연구하는 흐름이 "지나간 역사를 충분히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계몽주의의 본질적 특성으로 추정되는 요소들이나 유럽 제국들이 재패한 19세기의 시대상에서" 찾으려는 연구 성향을 비판한다. 집단 폭력이 발생하는 이유와 발생하는 형태를 마치 그 시대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규정지으려는 경향에서 벗어나, "먼 과거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유대인 대량학살의 역사 '홀로코스트'를 "정부가 주도한 대량 살인"으로만 보는 것은 "그 의미를 축소하여 정의"하는 경우이다. 인간사의 폭력성은 어떤 특정 집단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인간 행동의 고유 특성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인류에게 제노사이드가 끊이지 않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연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인간이 "폭력"을 경험하게 되면 윤리 의식이 저하된다는 주장이다. "투키디데스는 제국주의 통치가 시작되면, 특히 제국의 권위에 반항하는 세력을 제압하면 속국의 국민들은 물론이고 자국 사회 내에서도 윤리의식이 저하한다고 암시한다. 고대의 투키디데스와 현대의 아렌트가 상기시켜준 윤리적 타락이 바로 이 책의 주제라 하겠다"(31). 저자는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한 예로 이를 설명하는데, 새로운 속국을 쟁취하고 나면 승리를 거둔 국민들에게는 특정한 가치관이 형선된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관이란 탐욕, 욕심, 오만 그리고 자신의 본모습마저 기꺼이 저버릴 수 있는 마음이다(79). 새로운 속국을 쟁취한 승리 국가의 국민들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폭력을 통해 얻게 되는 명성, 이익 등이 잔혹한 폭력의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은 침팬지 사회에서 제노사이드를 발견한 제인 구달의 텍스트에서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의 도덕철학 및 정치철학 저작물, 그리고 성서의 출애굽기, 여호수아, 사사기까지 두루 살핀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출애굽기의 서사는 "신의 명령에 따라 정복되고 찬탈될 약속의 땅에 이미 거주하는 가나안족을 타도하거나 심지어 몰살하겠다는 전제로 한 민족에게 자유를 불어넣는 비전을 제시한다"(176)는 해석이 문제가 없어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폭력의 관점에서 성서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해석되는지를 읽는 시간은 유의미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수준'이 맞지 않는 책이 있다. 아무리 눈으로 글자를 읽어도 그 의미가 명쾌하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책을 "어렵다"고 말한다면, 이 책이 내게는 그렇게 어려웠다. 눈으로 글자는 따라가는데, 저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직선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할까. 그 의미를 머릿속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이 내게는 어렵고 지루했다. 이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독자의 수준이 미천한 까닭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