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발라카이
볼프강 헤른도르프 지음, 박규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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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카이는 '낯선 곳'이란 뜻을 지닌 독일어의 관용적 표현이자 루마니아에 실재하는 지명이기도 하다"(일러두기 中에서).

 

 

아이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의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청소년들에게는 책을 골라주기보다 직접 고르게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이 책, 진짜 재밌다"라고 힘주어 말하며 추천해줄 책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의 부탁으로 청소년 소설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문제는 청소년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청소년들의 흥미도 자극하면서 동시에 감동과 메시지도 전해줄 책을 찾기가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발라카이>도 고민입니다. 재밌게 읽었는데 이걸 청소년들에게 추천해주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주인공 마이크는 김나지움 8학년인 학생입니다(우리나라 중학교 1-2학년생에 해당). 신나는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는 금주 클리닉에, 파산 직전인 아버지는 바람난 여비서와 출장을 가는 바람에 큰 집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게다가 짝사랑하는 '타티아나'의 생일을 위해 정성껏 선물도 준비했지만 웬만한 친구들은 모두 초대받은 그 생일파티에 마이크는 초대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텅 빈 집에서 홀로 실의에 빠져 있는 마이크 앞에 고물차 한 대가 나타납니다. 러시아 출신 동급생 '칙'은 마이크에게 '발라카이'로 '자신들만'의 휴가를 떠나자고 제안합니다. 그리하여 "따분한 놈이면서 동시에 친구도 없는" 마이크와 "툭하면 술에 취해" 학교에 오는 삐딱한 러시아 녀석 '칙'의 좌충우돌 모험 여행이 시작됩니다.

 

<우리들의 발라카이>는 독일청소년문학상 수상, 3년 연속 베스트셀러 TOP 10, 클레맨스 브렌타노 문학상, 한스 팔라다 문학상 수상작이며, 독일에서만 40만 부가 판매되었고, 17개국에 번역 소개되었으며, 영화로 제작 중이기도 한 '검증된'(!) 청소년 소설입니다. 그러나 저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봅니다. 마이크와 칙의 여행을 세상과 마주하고, 우정을 쌓아가며,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으로 보기보다, 14살의 아이들이 훔친 고물차, 훔친 기름으로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달리는 이 여행이 아이들이 흉내내서는 안 되는 '위험'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 머릿속에는 부모님의 차를 훔쳐탄 청소년들의 끔찍한 교통사고 장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를 보면, <우리들의 발라카이>는 어쩌면 독일어로 읽었을 때 그 가치가 더 확연히 드러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따분한(?) 독일어로 어떻게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경탄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칙한테 내가 왜 너와 함께 발라카이로 떠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냐고 되물었다. 그건 내가 엄청 따분한 놈이어서였다. 너무 따분한 놈이어서 다들 참석하는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했고, 인생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따분하지 않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272).

 

여행을 떠난 마이크와 칙은 "자기 인생에서 제일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어른들의 말처럼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따분한 놈이며 심각할 정도의 겁쟁이라고 생각했던 마이크는 사실은 전혀 따분하지 않은, 자신이 충분히 "또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마이크는 칙의 비밀을 공유하며, 어른들의 협박에 맞서 우정을 지킬 줄도 알게 됩니다. 여행 이후, 타티아나와의 관계도 달라질 조짐을 보입니다.

 

십대 청소년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합니다. 마이크와 칙의 여행에 가슴이 설레일까요? 칙의 용기와 마이크의 성장에 도전을 받을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배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마이크와 칙의 '낭만적'인 이야기를 맘놓고 읽힐 수 있을 정도로 이들이 뛰어들 세상이 험악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느 책에서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회일수록 아이들이 나약해진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풍요로울수록 아이들을 과보호하게 되고,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걱정들을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상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친구와 단 둘이 고속도를 질주했던 '어느 날'의 기억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비록 이 책의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스무살을 훌쩍 넘은 나이였지만, 그때 친구가 운전했던 차는 아버지 차였고, 여자 둘이 떠나는 여행을 부모님들은 걱정하셨고, 컴컴한 밤길 운전과 새벽에 도착한 바닷가의 풍경이 살짝 겁도 났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훈이 아니라, 겁내지 않고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자기 확신의 에너지, 자신을 믿는 믿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이크와 칙이 경험한 똑같은(!) 여행을 아이들에게 권해줄 수는 없지만, 웅크린 인생이 되지 말고 이들처럼 도전하며 질주하는 삶을 살아보라고 격려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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