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스케치 노트 스케치 노트
아가트 아베르만스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진선아트북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여러분이 보고 관찰하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썼다. 대상을 이해하고 있을 때에만 그것을 종이에 제대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기 나름의 관찰 방식을 훈련해야 한다"(12).

 

 

소설가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작품에 보면, 국립 수목원의 자연생태를 세밀화로 그려내야 하는 세밀화가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최첨단 사진 기술로도 담아내지 못하는 생명의 경이를 표현하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여주인공이 대상(식물)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디지털 기술이 급성장하는 지금도 학술 세밀화 작업이 계속 되고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일 것입니다. <식물 스케치 노트>의 '간추린 역사'를 보면, "의학에서도 식물학에서도 글로 쓴 설명이나 과학적 표현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따라서 완전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려 넣을 필요가 있었다"(5)고 식물 스케치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회화에서는 오래 전부터 꽃의 묘사를 경멸"(6)했다고 하지만, 학술적인 관점에서는 세밀화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입니다. 

 

<식물 스케치 노트>를 펼치니, 오래 전 떠들썩 했던 미술 수업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듭니다.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물통에 물을 채워놓느라 분주하면서도 붓에 물감을 묻혀 장난을 치던 그 교실로 말입니다. <식물 스케치 노트>는 세밀화가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책처럼 보입니다. 상당히 전문적입니다. 그러나 어릴 적, 미술 수업이 화가 지망생들만을 위한 수업이 아니었듯이, 세밀화가를 꿈꾸는 학생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데생을 배우고, 수채화를 배우고, 유화를 배웠듯이, 식물 세밀화 그리는 법도 한번쯤 배워두는 거지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식물 스케치 노트>는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줍니다. 옆에 있는 꽃잎 하나, 이파리 하나, 나무 줄기하나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답니다. 식물 세밀화는 단순한 스케치가 아니라, 생명의 경이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식물 스케치 노트>는 얇지만 매우 친절합니다. 필요한 재료부터 꼼꼼하게 일러주는데, "수채화에서는 흰색을 표현할 때 물감이 아니라 종이 색깔로 표현"하기 때문에, "종이를 고를 때 이런 점을 생각해야"(8, 22) 한다든지, "정확하게 지울 수 있도록 손으로 주물러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 다음 톡톡 두들기며" 지울 수 있는 "미술용 떡지우개"가 존재하다든지 하는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 식물 세밀화 그리는 법을 배우다 보면, 스케치와 수채화의 기초를 저절로 익힐 수 있답니다.

 

"식물학과 식물분류학은 식물의 구조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식물 세밀화를 그리다 보면, 관찰력, 식물학적 지식이 당연히 향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입니다. <식물 스케치 노트>를 따라 그리기의 기초를 익히고, 식물의 구조를 익히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내주시는 과제처럼) <식물 스케치 노트>가 제시하는 '대상'을 한 가지씩 그려나가다 보면 식물 그림에 있어서 만큼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길 것 같습니다.

 

식물 세밀화가가 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입시 미술'을 준비하는 친구들 틈에서 '취미 미술'을 즐기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이 아직도 제 안에 꿈틀거리고 있나 봅니다. 입시라는 절체절명의 목표 앞에 취미 미술이 웬말이냐는 어른들의 야단에 깊이 묻어둘 수밖에 없는 소망이었지만, 또 치열한 일상에 밀려 끝내 꺼내들지 못했던 먼 꿈이었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통해 눈으로라도 배우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만 합니다. 이면지에 연필로 끄적끄적 따라그려보는 내내 혼자 계속 웃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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