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통해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알았다. 나중에야 그녀가 영국 소설가라는 것을 알았고, 정신병을 앓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운한 여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삶과 마지막 모습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그녀의 작품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구석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출항>을 받아들고 알았다.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이지만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그녀의 음울함을 느꼈던 것일까. 아마도 단편적인 인용이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었나 보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그래도 꽤 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선구자적인 작가로 알려진 탓일 게다. 아무튼 그녀만큼 작품보다 작가 자신이 더 주목받는 경우도 많지 않을 듯하다.

 

"10여 년간 열두 번을 고쳐 쓰며 34세에 내놓은 울프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출항>, 이 책을 읽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만큼 널리 읽히지 않는 이유를 알 듯하다. 한마디로 어렵다! 읽다가 몇 번을 덮어버렸을 만큼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찾아보니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소설에 도입한 작가라고 하는데, 이런 저런 문학적 문제의식 없이 그저 소설 읽기를 즐기는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난해함 그 자체이다.

 

할 수 없이 책의 뒤에 붙은 '작품 해설'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작품 해설'이 없었다면 <출항>은 나에게 단지 어렵기만 한 소설로 남았을 듯하다. 혹시 나처럼 읽다가 포기하고 싶어지는 독자가 있다면, '작품 해설'을 먼저 읽어보라고 권한다. 작품에 담긴 상징과 의미가 깨달아질 때 비로소 작품의 가치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행상무역과 선주인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편안하게 살아온 여주인공 레이첼은 아버지의 배를 타고 휴가를 떠난다. 스무 네 살의 레이첼은 그곳에서 외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전직 국회의원 부부와 만나게 되는데, 어는 태풍이 치는 날 밤 레이첼은 첫 키스를 경험하고 악몽에 시달린다. 이것은 이렇게 해석된다. "자신이 인생 절정기에 있다고 느끼는 아버지뻘인 사십 대의 리처드와 레이첼의 키스는 일종의 성적 강간을 의미한다. 울프는 이들의 키스 장면을 태풍에 크게 흔들리는 레이첼의 선실로 설정함으로써 이 성적 폭력이 레이첼의 정신에 가져올 태풍의 효과를 상징적으로 암시한다"(371).

 

예전에 '다세포 소녀'라는 영화를 보고 몹시 불쾌했던 적이 있다.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저질 영화를 만들었을까, 의문이었다. 그런데 대중문화 관련 과목을 수강하며 나의 무지를 뉘우쳤고 그 영화에게 미안했던 기억이 있다. 'B급 영화'을 몰랐던 나는 그 영화의 의도와 감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출항>이 나에게는 그처럼 낯설고 난해하다. 아마도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으려면 작가에 대해, 그 시절의 사회상에 대해 알아야 하고, 약간의 문학적 지식도 필요할 듯하다.

 

백지 같은 삶에서 세상으로 '출항'하며, 여행과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 속에서, 또다시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는 여주인공 레이첼, 레이첼 이야기의 가장 의미심장한 부분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결국 여행지에서 얻은 열병으로 죽게 된다는 설정이 아닌가 싶다. <출항>이라는 제목과 이율배반적이게도 버지니아 울프는 왜 레이첼을 죽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소설은 픽션이고, 그래서 소설과 작가는 별개라고 하지만, <출항>은 버지니아 울프를 모르고서는 읽혀지지 않는 소설이다. 작품 해설에 의지하고 않고 직접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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