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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or 세계를 물들인 색 -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한 인간의 분투
안느 바리숑 지음, 채아인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좋아하는 색깔은?" 100문 100답 같은 놀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다. 세상에는 '색'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다양한' 것을 '선'으로 생각하는 철학 덕분인지 색의 세계는 더욱 풍부해지는 듯하다. 다양성을 지향하지만 또 '색'은 인간의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색깔"을 묻는 질문처럼, 색은 그 사람의 개성을 나타내주는 기호의 하나로 기능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나 연인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같은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쉽게 소통의 고통분모가 공유되기도 한다.
고고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안느 바리숑'은 그의 책 <더 컬러>를 통해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색'의 역사를 보여준다. 인간은 그 색을 어떻게 해석하고 상징했는지, 또 인류가 원하는 색을 손에 넣기 위해 어떻게 애를 써 왔는지, 또 그 색은 어떤 쓰임새를 지녔는지 분석한다. <더 컬러>가 다루는 색은 크게 일곱 가지이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녹색, 갈색과 검정색. 책에서는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읽다 보면 인류의 역사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하며 많은 상징을 지닌 색은 흰색, 노란색, 빨란색이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가장 빛나는 흰색은 신성한 색으로 받아들여진다.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온기를 상징"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신성을 상징하기도 해서 다양한 의례와 제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우유를 닮은 흰색은 유목민들에게 "조용한 축복"을 의미하기도 하고, "감사, 존경, 기쁨, 행운, 풍요의 색이자, 악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나타내주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부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병색이 완연함을 의미하기도 하고, 이미 생명의 불이 꺼진 신체의 색이기도 하고, 유령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죽은 이를 위한 애도의 색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흰색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의 장"(33)이라고 하는데, '흰색' 안 생명(창조)과 죽음이 동시에 투영되어 있음을 본다.
노란색도 마찬가지이다. "빛나는 노랑은 봄에 다시 피어나는 꽃의 색이자 가을 추수의 색이며 황금의 색"으로 풍요로움을 뜻한다. 그러나 "조금만 빛이 바래도 사막의 건조함, 가을의 흉작, 악마의 유황, 쓰디쓴 담즙을 상징"하는 가장 모순적인 색이기도 하다. 노란색은 동양에서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양에서 노란색은 행복의 색(인도), 황제의 색(중국), 은둔을 상징하는 불교의 색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을 덮쳤던 노란별의 공포", 축구장에서 심판이 드는 경고의 옐로카드 등 불명예의 색이기도 하다. 노란색의 또다른 특징은 대지와 식물에서 수많은 안료를 구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식물에는 다른 것을 노랗게 물들일 수 있는 색소가 있습니다"(59).
흰색이나 노란색 만큼 주목해볼 만한 컬러는 대지의 색, 피의 색으로 통하는 빨간색이다. 라틴어로 보면 '붉은 흙으로 만든'이란 뜻을 가진 아담(사람)의 색이기도 하고, 생명의 피, 그리고 죽음의 피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빨간색은 여러 색들 중에서 "힘을 상징하는 바가 가장 큰 색"이라고 한다. "현란하며 매혹적이고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빨간색은" 남성에게든, 여성에게든, 밀고 당기는 색이며, 유혹적인 색이다. 또 피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주술적인 색, 전쟁의 색이기도 하면서, 권력의 증거가 되는 특권의 색이기도 하다. 빨간색이 이렇게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은 안료를 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주 적은 양의 색소라도 수많은 연지벌게 암컷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염료는 터무니없이 비쌌습니다. 그래서 이 염료로 물들인 옷은 오직 왕족과 고위 귀족만이 손에 넣을 수 있었지요. 오늘날에도 빨간색은 서양에서 명예의 색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명망 있는 인사를 맞이할 때는 레드 카펫을 깔지요"(111).
흰색이나 노란색, 빨간색(그리고 갈색과 검정색)에 비해 보라색, 파란색, 녹색은 그 지위가 비교적 낮아보인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연에는 노란색, 빨간색, 갈색, 검은색의 염료와 안료는 풍부하지만, 파란색을 얻을 수 있는 물질은 조금밖에 존재하지 않"(161)으며, 녹색은 그보다 더 얻기가 힘이 드는데 "그 어떤 식물을 사용해도 자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녹색은 얻을 수가 없"(191)다고 한다.
<더 컬러>는 같은 색도 시대와 문화와 지역에 따라 '운명이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품없고 매력 없는 색이기도 했다가, 왕좌에 군림하는 지위를 얻기도 한다(파란색). 높임을 받았다가 천대를 받기도 하고, 천대받았다가 높은 지위를 얻기도 하는 컬러의 운명과 생명력이 흥미롭다. '컬러'는 그 자체로 '문화적인 코드'이면서, 또 '원초적인 자연'이라는 사실이 새삼 깨달아진다. 웰빙 바람과 함께 '검정' 음식이 건강을 상징하고 있듯이, 컬러가 지닌 상징적 의미도 인간의 변덕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무심코 선택하는 컬러에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상징이 투영되어 있을까. <더 컬러>는 설명 방식이 맥락 없어 설명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쉽지만, '그 만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다면, 얻는 것이 더 많을 것 같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