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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2 2 - 혼자 살다 갈 수도 있겠구나… ㅣ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남은 일생, 혼자 살다 갈 수도 있겠구나"(126).
"다만 이렇게 혼자 살다 가더라도
'고양이를 50마리쯤 키우고,
늙고 병들었으며,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자기 관리도 전혀 하지 않으며,
집에만 은둔하는, 여자 만화가'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146).
격한 공감!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가 자신의 일기장을 선물로 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1년 간을 기록한 일기장이었습니다. 정해진 궤도를 맴도는 행성처럼 반복되는 날들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레일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기차처럼 '탈선'이 용서되지 않는 같은 모양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벽장에 숨어 있던 비밀통로처럼, 친구의 일기장은 지나온 그 시간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그 '별 일 없는' 1년을 보내고, 새로운 학년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기만 했었는데, 그 '별 일 없는' 일상이 사실은 더 없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친구의 일기장을 통해 배웠습니다. 저녁으로 떡볶이를 사먹고 야간자율학습을 위해 다시 교정으로 들어서던 그 고단했던 봄의 어느 날, 그곳에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벚꽃나라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까르르 웃고 있었습니다. 체육대회 반대표로 남아서 핸드볼 경기를 연습하고 있던 어느 날은 반친구들이 응원의 뜻으로 사 준 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까르르 웃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우리는 자율학습 중인 교실을 몰래 빠져나와 등나무 아래 앉아 있었는데, 담장 밑에서 들려오는 어떤 노래 때문에 괜히 눈물을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선생님께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던 일도, 쪽지 시험을 본 후 단체 기합을 받았던 일도, 영어 선생님께 배운 팝송을 흥얼거리는 일도, 책상 밑으로 몰려 숨겨놓고 하이틴 로맨스를 읽었던 일도 모두 그 '별 일 없던' 1년에, 그냥 지나쳐온 이야기였고, 그것이 친구의 일기장을 통해 예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낢이 사는 이야기>는 꽤 유명한 웹툰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책입니다. 손에 책을 들고 있으니 남동생이 화들짝 반깁니다. "그거 정말 재밌는데. 재밌지?" 이제 읽기 시작했다고 하는데도 계속 옆에서 확인을 합니다. "재밌지? 재밌지 않아?" 다 읽고 물었습니다. "넌 뭐가 그렇게 재밌었어?"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네요. "공감이지, 공감! 공감가지 않아?"
확실히 그랬습니다. <낢이 사는 이야기>는 '별 일 없는' 일상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 소소한 날들의 기록입니다. 심야 택시를 타게 됐을 때, 괜히 무서운 마음이 들었던 그 날, "보세요, 아저씨. 나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답니다. 없어지면 누가 찾을 거에요. 그러니 부디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 주세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혼자 '쇼'를 벌이고, '혼자 살겠다'는 이유로 자취 생활을 시작한지 4년 째에 접어든, 만화 그리는 일을 하며 8년째 웹툰을 연재 중인, 생애 첫 흰머리를 동생에게 100원 주고 뽑아달라고 하는 여자 만화가의 일상입니다. 파격적이지 않아서 더 신선하고, 꾸미지 않아서 더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이야기도 유난히 재밌게 하는 친구가 있고, 똑같은 경험을 해도 예쁜 의미를 잘 부여하는 친구가 있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 괜히 유쾌해지는 친구가 있습니다. <낢이 사는 이야기>는 그런 친구와의 만남같았습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 '별 일 없는' 일상도, '어, 꽤 괜찮은데' 하게 되는, 매일 강아지에게 밥을 주는 것과 같이 별 감흥이 없던 일도 괜히 재밌어지게 만들어주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치유력이 있는 책입니다. 읽는 내내, 투박하지만 유쾌한 '만화'(그림)가 주는 편안함 속에서 편안한 웃음을 웃었고, '어,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라며 주인공과 대화를 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주인공에게 나의 문제를 투영해보기도 했습니다. 이 '특별할 것 없는'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집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