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여행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 한 손엔 차표를, 한 손엔 시집을
윤용인 지음 / 에르디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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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상은 나를 향해 아우성을 친다.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채찍질에 하루도 마음이 조용할 날이 없다. 나는 매일 세상의 요란함으로부터, 나를 노예 삼고 있는 생존의 고리로부터, 놓아주려 하지 않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꿈을 꾼다. 그러나 물리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조용한 장소를 만나도 잡념만 가득해질 뿐이다. 고독해지고 싶은데, 병적인 외로움만 깊어 간다. 뾰족한 산꼭대기 위로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저주받은 시지푸스처럼, 죽어라 산꼭대기로 밀어올린 바위가 다시 밑으로 떨어진 그 잠깐의 시간이 찾오면 똑같은 질문이 다시 나를 괴롭힌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어차피 다시 굴러떨어질 바위를 왜 다시 밀어 올려야 하지?' 그리고 다시 나를 노예 삼고 있는 세상과 마주할 때의 패배감이란.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영혼 안에는 행복과 의미 있는 삶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고 했다.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 내 안에 있는 그 목마름을 조용히 음미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이 세상 어디 쉴 곳이 있나?'라는 아우성을 잠재울 수 있는, 내 안으로 떠나는 고독한 시간, 그런 여행의 시간이 못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다. <시가 있는 여행>의 저자는 "감상은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찾아오지만, 여행자는 가끔 그 감상을 인위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시를 들고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지에서 시집을 들었을 때 여행자는 시인이 된다고 말한다.

 

시집을 들고 떠나는 여행은 고독한 여행이었고, 낯선 세상에서 더 낯설게 느껴지는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비워짐과 동시에 채워짐의 과정. 나를 비워냄으로써 새롭게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묶은 땅을 기경하듯, 내 마음 밭에 떨어진 상한 씨앗, 나쁜 씨앗을 골라내고, 탐스럽고 싱그럽게 열매 맺을 생각의 고운 씨, 시의 맑을 씨를 마음 밭에 다시 심는 작업의 시간이었다. <시가 있는 여행>은 그 구성이 독특하다. 여행의 감상을 잔잔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고, 시가 있고, 여행 정보가 있다. 철로의 서정을 느낄 수 있는 곳 항동, 생명의 소음이 있는 곳 광장 시장,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튀김 녹두전, 모둠 해물, 마약 김밥, 운동을 넘은 치유의 길, 제주 올레, 하늘에서 가까운 낙산 마을 이야기가 1장을 구성한다. <시가 있는 여행>은 여행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무엇인가를 묵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등 시창각적 기계 문명의 발달로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것들이 시각화되면서 그 기능을 점점 잃어가는 듯한 상상력이 다시 되살아는 느낌이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빨리 익히고, 빨리 결과를 보고 세상의 속도가 앗아간 우리의 인내심을 다시 찾는 느낌이다.

 

<시가 있는 여행>은 느린 발걸음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 소나무를 음미하며 타인을 타인으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그림자가 쉬어간다는 곳(식영정)에서 고즈넉한 운치도 맛보고, 순환하는 자연의 봄을 느끼며 절망의 끝에서 찾아오는 인생의 봄을 찾고, 풀처럼 힘을 주지 않고 사는 법도 배우고, 갈대밭에서는 순응하는 삶도 배운다. 천천히 음미하는 일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시가 있는 여행>은 소리 없는 반란이다. (저자가 인용한 보들레르의 시구처럼) "우리들을 비참한 일상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이 알 수 없는 열병", 그 여행의 힘이 함께 떠나자고 힘껏 나를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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