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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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들다.

 

 

중, 고등학교 시절 책상 밑에 숨겨 두고 몰래 몰래 읽었던 소설이 있었다. 선생님께 발각되어 책이 압수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했지만, 수업 시간에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소설이 있었다. 이름하여, '하이틴 로맨스.' 주인공들이 운명처럼 만나고, 오해와 갈등 속에 서로의 마음을 속이다, 드디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그 클라이맥스와 만나기 위해 우리는 숨도 쉬지 않고 달리듯이 읽었다. 그렇게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돌려보며 사랑의 환상에 젖어 가슴이 두근대던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이후 같은 작가의 소설인데 그보다 더 재밌는 소설이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내게로 왔다. <해를 품은 달>, 독자들 사이에 불길처럼 번지는 소설이라 했다. 그런데도 오래 미뤄두고 읽지 못했다. 드라마로 방영이 되고, 첫 회부터 시청률 고공행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는 기사가 여기 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나서야 겨우 손에 들었다. 아마도 '조선'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완전한 허구라는 것 때문에 '가벼운' 책이라는 선입견이 내게 있었던 듯하다. '이산'처럼 인물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거나, '뿌리 깊은 나무'처럼 역사를 매개로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사극처럼 '무엇인가 교훈적인' 가르침, 의미있는 책읽기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는 허세가 (읽기도 전에) 이 책을 가벼이 여기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가지고 책을 읽어본 적이 언제인지, <해를 품은 달>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가슴은 두근대었다. 등장인물을 상상하며 괜히 혼자 설레였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사랑에 아파하는 주인공들의 대화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가슴도 같이 울렁이며 요동치었다. 군주의 위엄을 품은 세자이면서 잘 생기기까지 한 순정남 훤, 자수보다 책을 더 사랑하는 총명하고 기품 있는 연우 낭자, 그 자체로 판타지가 되는 초절정 천재 꽃미남 염, 가장 강한 사나이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 안아주고 싶게 만드는 천하제일 검 운, 이 책을 읽으며 흘린 눈물은 모두 그를 위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가여운 남자 양명군, 미워할 수 없는 민화공주,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노래하는 시린 설의 사랑까지, 어떤 청춘의 사랑 하나도 눈부시지 않은 것이 없다. <해를 품은 달>은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이지만, 미스테리를 추적해들어가는 긴장감이 재미를 더한다. 성리학을 사회 지도 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궁궐에 존재했던 소격서와 성수청의 존재도 흥미롭다. 그리고 조선에 외척이 득세할 수밖에 없었던 제도의 허점도 처음으로 보였다.

 

사랑을 게임이나 놀이로 여기는 세태 속에 오랫만에 두근거리며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을 만나 반가웠다. 드라마까지 이슈 몰이를 하고 있는데, 원작이 가진 스토리의 탄탄함이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한다. 기품 있는 사랑, 이런 사랑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잃어버린 꿈 하나 다시 찾게 해주는 아름다운 로맨스,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당분간 나를 잠못들게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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