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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상처를 말하다 -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
심상용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2월
평점 :
신은 화가에게 "세상을 감각하고, 감동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허락했다(95).
<예술, 상처를 말하다>는 "현대 사회가 예술의 공동묘지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역사는 예술이라는 가치가 권력자의 웅변이나 승자의 도취된 함성 속에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것임을 부단히 일깨워왔음에도, 오늘날의 예술은 도전과 위험의 기피, 안락함, 자기도취라는 창조성의 소멸 속에 스스로 갇혀 있음을 고발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의내린다. "수많은 좋은 예술은 상처 받은 영혼이, 믿음이라는 나약해 보이는 힘에 의존해 벌여온 도전의 결과"라고.
그러므로 저자가 스스로 밝히듯이 "그러므로 명성과 대중적 인기, 이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 작가는 이 책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의 목차를 보면 독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와 같은 사람도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는 카미유 클로델,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백남준, 앤디 워홀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앤디 워홀이나 마크 로스코, 장미셸 바스키아 같은 스타급 작가의 언급은 그들이 재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카미유 클로델, 빈센트 반 고흐 같이 유명한 화가도 대중적 인기 너머의 진실을 다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미디어화되는 과정에서 덧씌워진 거품을 걷어내고, 포장된 업적과 누락된 인생이 합작해 만들어내는 착시를 극복하는 것", 다시 말해 세속적 성공과 명성, 시장적 가치, 과정되기 일쑤인 미술사적 의미라는 잣대을 해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시도하는 작업이다.
<예술, 상처를 말하다>를 통해 저자는 "예술은 그 주체가 실존의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원하지 않았던 가난이나 무명의 수치를 경험하면서 오히려 더 좋은 것이 되는 역설적인 가능성의 보고"였음을 증언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열 명의 작가들과 그들의 예술을 통해 약함에 내재하는 신비로운 힘과, 강함에 동반되는 역설적인 공허에 증명하고, "그렇기에 예술가들에게 약함은 역설적인 축복이요, 고통스러운 희열"임을 일깨운다. 작가가 가장 먼저 언급하는 카미유 클로델을 보자. 그녀의 삶은 사랑하는 동생에게조차 '신의 저주'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을 만큼 고통의 연속이었고, 비극의 대명사가 되었다. 카톨릭 국가에서 유부남을 사랑한 그녀는 (교회와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었고,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했고, (가족에 의해) 유기되었으며, (작가로서는) 과소평가되었고, (정신질환자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다.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카미유의 고통스러웠던 인생을 고상한 예술로 포장하고, 그녀가 남긴 것들에만 지나치게 방점을 찍는 것은 그녕(예술)를 이해하는 적절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약자였고, 억눌리고 짓밟힌 영혼이었던 카미유! 억지스러운 해석의 틀 위에 그녀를 씌우지 말고, 예술가의 그 실존적 앓이, 그 날 것의 자리에서 (그녀의) 예술을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저자의 이러한 주장 자체가 예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프레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틀로 프리다 칼로를 다시 보자. 저자는 프라다 역시 '위대한 여성예술가'를 위해, 극심한 고통에 내던져졌던 실존적 인물은 제거되거나 최소한 희석되어야 했다고 고발한다. "프리다의 삶과 예술에서 보다 선행되어야 할 이해는 그녀의 삶에 수반되었던 극심한 고통이 그녀의 삶을 얼마나 다른 것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실패와 그 인식 자체에 이미 신비로운 힘이 내재한다. 실패의 고백이 어떤 탁월한 영웅담보다 더 필연성에 대해 증언해주기 때문이다. 성공담은 자주 헛된 꿈을 꾸게 만들지만, 실패는 이 땅의 진실과 대면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실패, 패전, 후퇴, 도태, 낙후, 지진아, 흉년, 재앙, 유기, 폐기 등의 사건들에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감춰진 '미적 정확성'이다"(133).
상업적으로 각색된 이미지와 신화화된 예술을 단지 소비하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깊은 차원에서 예술을 만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 상처를 말하다>는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 예술의 본래 가치, 예술과 만나야 할 본연의 자리가 어디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의 글이 너무 어렵다! 삶의 고통 가운데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의 상처를 말하는 저자의 언어는 이율배반적이게도 강자의 것이다. 이 책을 즐거이 읽으려면 수준 높은(?) '글' 읽기에 익숙한 독자라야 할 것이다. '배운 티'가 저절로 배어나는 난해한 문장들은 몰입을 방해하고, (상술이나 미디어화 등에 대한) 비판적인 주장이 (지나치게)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지루해지고, 어떤 이야기들은 "(알고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할 예술가의 뒷모습"이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이라고 과장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많이 생각하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만은 분명하다. 전문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깊이 있는 탐구를 시도한 <예술, 상처를 말하다>가 많은 독자의 (대중적인)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수준 높은 작가의 문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