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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회 - 평등이라는 거짓말
대니얼 리그니 지음, 박슬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삶이 언제나 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이 당연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는다"(167).
월가 점령 시위가 한달째 지속 되는 것에 맞춰,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금융자본 시위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 금융심장부도 시위대에 '점령'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한국에서도 소수만을 위한 금융자본의 탐욕과 불의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듯이 <나쁜 사회>의 저자 대니얼 리그니는 "미국의 경우,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언제나 그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곤 했다. (...) 앞으로 이런 저항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181)라고 전망했다. 로버트 머튼이 명명한 '마태 효과'를 중심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역학을 파헤친 저자는 이 책의 의의를 이렇게 요약한다. "마태 효과와 그 치명적인 결과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광범위하게 퍼진다면, 우리 시대의 사회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 보다 진지하고 수준 높은 논의가 진행될 것이며 그에 따라 21세기에 더욱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에 맞서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양극화에 대한 진지하고 수준 높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시점이며, 우리는 지금 올바른 선택과 행동의 기로, 그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손에 <나쁜 사회>가 던져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저자는 우리가 처하게 되는 사회적 불평등을 이렇게 비유한다. "어떤 사람들은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25). 얼마 전, '대기업에 들어가는 방법'이라는 풍자 개그 대로, 10시간씩 시급 4320원을 받고 숨만 쉬고 일하는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30세에 손쉽게 상무가 되는 회장 아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쁜 사회>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위는 더 나은 우위를 가져오고 열위는 더 못한 열위를 가져옴으로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계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이러한 현상을 '마태 효과'라고 불렀는데, 마태복음 13장 12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을 빌려온 것이다"(13).
머튼의 연구는 '과학 부문의 보상체제'를 연구하는 데 초점이 있었는데, <나쁜 사회>는 누적 우위 연구를 과학사회학 분야로만 제한했던 장벽을 허물고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마태 효과를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탐구의 장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자평한다(45). 저자는 과학과 기술 분야의 마태 효과, 경제 분야의 마태 효과, 정치와 공공정책 분야의 마태 효과, 교육과 문화 분야의 마태 효과를 분석하며 이러한 시도가 "서로 고립되고 단절되어 있었던 연구 분야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담론으로 통합하는 과정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나쁜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마태 효과의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에 주목한다(47). 다른 말로 하면, 마태 효과의 역기능에 보다 중점을 두고 불평등 현상이 진행되는 매커니즘과 심화 과정 탐구이다.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의 역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마태 효과'는 반드시 끼워 맞춰야 할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라고 역설하는데, 마태 효과가 폭노하는 불평등이란 일단 존재하게 되면 영속적이고 자가증식적인 특성을 발휘하게 되고,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 결과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더 커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문제는 선취가 우위가 자가증식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쉽게 '복리'에 비유하여 설명하는데, 이러한 자가증식적 고리를 가진 '우위 누적'은 우위가 다시 우위로 이어져 수혜자들의 기회구조를 확장하고, 그럼으로써 더 많이 가진 자들과 더 적게 가진 자들 사이의 격차를 넓히는 원인이다. <나쁜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은 보다 큰 성공을 불러오고 실패는 더욱 큰 실패로 이어지는 경향을 분석한다. '성공할 기회가 있다는 것'과 '성공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실감나게 배울 수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처럼 초기의 조건 자체가 불평등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특권이 주어진 조건에서 명백한 우위를 선점한 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은(미국인들의 의식만 이런 것은 아니리라) 자신이 평등한 기회의 땅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살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부자는 부지런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왜 그럴까? (미국인의 경우 그들의 오랜 종교적 신념이 그 기저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비밀'이 폭노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은 이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은 사회라는 자각은 희망을 거세하고, 희망을 빼앗긴 마음은 힘 없는 분노에 시달려야 할 테니 말이다.
이러한 '마태 효과'의 역효과(역기능)를 축소하거나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몇 가지 대항력(마태 효과를 억제할 수 있는 힘)을 설명하는데, 평균으로의 회귀, 천장 효과, 바닥 효과, 세대 간 분산, 낙수 효과, 평등주의운동, 정부의 개입, 이타주의와 계몽된 이기주의 등의 개념을 배우며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좋았다. <나쁜 사회>는 대중적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이론적 연구서적에 가깝기 때문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그 재미가 더 하리라 생각된다. 한 가지, 계속해서 지워지지 않는 이 찜찜함은, 더 많이 가진 자와 더 적게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넘어 세계적으로 조직적으로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는 음모일지 모른다는 불안한 그림자가 스멀스멀 자리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