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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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팻(fat)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사람들은 점점 더 뚱뚱해져서, 사모아는 도시 인구의 75퍼센트가 비만이다. 비만은 이제 '전염병'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12). 이러한 보고를 접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은 비만으로부터 안전하며,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비만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한숨 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시 이제 비만은 세계적인 트렌드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을 얻는 사람도 있을까?) 또 한편으로는 한창 박차를 가하고 있는 다이어트 강도를 더 높여야겠다고 결의를 다질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날씬한 몸에 그토록 집착하면서도 실제로는 더 뚱뚱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257).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Fat(팻)>은 13명의 인류학자와 비만인권운동가 1명이 다양한 측면에서 '팻'(지방, 살, 비만)을 탐험하고 분석한 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마디로 "뚱뚱함은 문화가 만들어낸 구성물"이라는 주장이다. "인류학은, 한 사람의 욕망은 매우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가르친다"(200). 인류학의 이러한 가르침은 '뚱뚱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 (하나가 옳다 주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팻에 깃든 다중적 의미와 문화적 아이러니를 고찰함으로, 뚱뚱함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단순한 시각을 교정하여 팻을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Fat(팻)>이 가르쳐주는 핵심적인 사실 하나는, 알고보면 "날마다 우리에게 퍼부어지는 문화적 경구는 모순적"이라는 사실이다. 요요 현상 덕분에 더욱 '비대해지고' 있는 건강-뷰티-헬스 산업은 우리에게 무조건 살을 빼야한다고 주장하지만, 팻(지방, 이상적인 몸매 등)은 사회(문화)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팻(지방)은 성장이나 풍요로움을 뜻하기도 하며, 권력과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기름진 음식과 뚱뚱한 몸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부의 상징인 반면, 현대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상징이다"(9). 또 "기름진 음식에 둘러싸여 있는 미국인들에게 지방이 가득한 음식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인 동시에 괴로운 악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배고픔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스타코 이야기가 떠도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시달리거나 매일 그러한 빈곤을 목도한다 그래서 살집이 붙어 있다는 것은 생명과 건강의 표시다"(83).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인류학의 이러한 가르침에 불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그 '비민과 집착'의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아닐까. 여성의 뚱뚱한 몸매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니제르 종족의 미적 기준을 연구한 한 인류학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렇지만 옷과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것과는 달리 외국의 이런 미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살을 찌우는 것은 나 자신을 배신하고 내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매도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풍만한 몸매처럼 내가 살아온 문화 속에서 형성된 것일 뿐이지만, 내 자아상에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서 바꿀 수가 없었다"(30). 다시 말해, 이상적인 체형이란 광범위한 문화적 가치에 기반을 둔 관습과 신념이 몸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비만을 죄악시하고 깡마른 몸매를 이상화하는 문화에 자신의 '몸'으로 직접 저항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모두가 살을 빼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데 아무리 이상적인 몸래에 대한 관념이 상대적인 것이라 해도 누가 보기에도 날씬한 '현재' 나의 몸을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봐야 할 점은, 니제르 여성보다 더 많은 자유와 기회를 가진 서양 여성들이 왜 그렇게 미적 이상 앞에서 무력해지고 위협을 느끼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것은 문화 평론가 로라 키프니스의 말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문화 평론가 로라 키프니스는 비만을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이라고 보는 대신, 사회적 지위가 하강할 것을 예견해 주는 표시라고 말한다. 뚱뚱한 사람은 취직할 확률이 적고, 취직한다고 해도 승진할 기회가 많지 않다"(114). 팻(지방, 살)을 죄악시 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상적인 몸매'는 (무시할 수 없는 권력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상징적 자본으로 기능하고 있다.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Fat(팻)>은 인류학적 연구의 결과물로 탄생한 학술적 논의이지만, 음식(올리브유, 돼지비계, 스팸 등), 뚱보 포르노, 살에 관한 10대 소녀들의 담화, 지방 빼는 약(다이어트 약), 커피 등 일상적이고 친근한 문화적 코드를 매개로 '팻'에 관한 성별, 경제, 사회, 정치적 함의를 재밌고 쉽게 풀어내었다. 13명의 인류학자와 1명의 비만인권운동가가 전하는 '팻'에 관한 논의는 한마디로 '혼돈'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대변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문화를 소비하는 일을 멈추고 문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우리는 현실을 만들고 변화시킨다"(352).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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