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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고 꽃을 보라 - 정호승의 인생 동화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1년 8월
평점 :
시인이 들려주는 동화, 따뜻한 지혜로 가득합니다.
배추애벌레는 매일같이 배춧잎을 갉아먹는 게 일입니다. 배춧잎을 갉아먹고 살도록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배추애벌레의 운명입니다. 그러니 배추애벌레가 배춧잎을 갉아먹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은주 할머니는 배추밭에 올 때마다 벌컥벌컥 화를 냅니다. 요놈의 벌레들 때문에 배추농사 망친다고 벌레를 다 죽여버린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배추애벌레를 "해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한테 해로움을 주는 벌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멋대로 지어낸 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그렇게 여기리라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배추애벌레는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배추애벌레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해충이 아닙니다. 그냥 배추애벌레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또 얼마나 간사한지 모릅니다. 한 친구가 눈물을 흘리는 배추애벌레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배추흰나비가 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려야 돼.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우리를 또 익충이라고 해." 나비가 되어 농작물들의 꽃가루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주는 일을 한다고 익충이랍니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지어낸 말입니다(216-220).
지구상에 사는 생명 중에 자연의 이치에 가장 어둡고, 이기적이고, 불평이 많은 것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배추애벌레를 보며 '해충'이라 부르고 그 애벌레가 배추흰나비가 되면 다시 '익충'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자기를 '해충'이라 부르는 사람들 때문에 슬퍼하는 배추애벌레에게 "아니야, 그건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야"라고 일러주는 지혜자의 목소리가 제 가슴 속에도 큰 울림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오로지 내 입장에서 상대를 함부로 재단하지는 않았던가. 또 자기 입장에서 자기 편의대로 말하는 목소리에 내가 흔들리지는 않았던가.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제는 그런 목소리를 들어도 전처럼 크게 상처받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인생 동화 <울지 말고 꽃을 보라>에는 이러한 지혜가 가득합니다. 제목처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주는 책입니다. 늘 흘러 넘치는 샘물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샘물은 흘러 넘치지 않으면 썪고 만다는 것, 희생과 기다림(인내)이 있어야 진짜 사랑이라는 것, 흔히 눈물이나 고난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겨울을 견디어야 하는 매화처럼 인생에는 눈물과 고난도 필요하다는 것. 시인은 동화(이야기)의 형식을 빌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들려줍니다. 오래 우려낸 진국처럼 깊은 맛이 납니다. 봄날의 햇살처럼 차가워진 심장을 데워주는 따뜻함으로 가득합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착한 책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사람들의 시각은 얼마나 제각각인지요. 그런데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그 결말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옛말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절망할 수도 있고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면, 이왕이면 희망을 품으며 살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좋고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희망이 저절로 품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들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에너지원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 서평은 해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