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독창적이고 낯설고 아름답다.
독창적이고 낯설고 어렵다.

 
특히 두 가지 면에서 굉장히 독창적이고 낯선 작품이다. 첫 번째는 이것이 과연 소설인가 하는 점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 경계를 구분할 수가 없다. 게다기 신문 보도 자료 같은 사진의 수록은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소설에 도전하는 느낌을 준다. 두 번째는 여행기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이다. <토성의 고리>는 영국의 동남부 지방을 여행하는 한 여행자(마치 구도의 길을 찾아떠난 순례자와 같은 분위기)가 들려주는 내면의 목소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여행자를 따라다니며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은 영국의 동남부가 아니라, 인류의 문명과 그 잔해이다. 공간감각을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시간과 시간이 교차하는 가운데 공간에 대한 지각도 몽롱해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여행자를 따라 영국의 한 지역에 서있는 눈앞으로 인류의 문명사가 흘러간다.

여행기의 형식을 빌어 사실과 허구를 직조한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한 시대 전체가 끝나는 건 한순간의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43).

<토성의 고리>를 읽는 내내 긴 장례행렬을 따라 걸으며, 한 때 화려하게 피어났으나 이제는 잔해만 남은 현장을 목격하며 쓸쓸함을 추모하는 경건한 조사같은 느낌을 받았다. <토성의 고리>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한 문장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인류문명의 추모기도와 그 경건한 감동"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폐허로 변해버린 숲과 저택, 멸종된 청어, 버려진 공장, 몰락한 도시, 화려한 전성기를 지나 이제는 서서히 파고드는 쇠락의 흔적, 화자가 걷는 길에 만난 풍경은 화려했던 과거에 정비례하는 비애감에 젖게 만든다. "그전에 그는 창문을 장식하는 튤립나무, 스톡, 애스터들, 먼 동인도에서 차와 설탕, 조미료, 쌀 등을 가득 담고 항구에 도착하는 궤짝, 둥근 꾸러미, 나무통들을 보면서 질투심을 느꼈지만, 이제부터는 가끔씩 자신은 왜 세상을 돌아다니면서도 거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지 스스로 물어보게 될 때마다 거대한 저택과 호화로운 배를 가졌지만 결국 비좁은 무덤에 묻힌 그 암스테르담 상인을, (...) 그 상인을 떠올렸다"(60).

그러나 과거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남겨진 폐허는 우리가 걸어갈 그 (인생의)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미리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폐허에 가까이 갈수록 망자들의 신비로운 섬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고, 그 대신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우리 자신의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278).

얼마나 해박해야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자, 독서의 문제는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것! <토성의 고리>는 (적어도 내게는) 한 번 읽고 그 진의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은 <토성의 고리>를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뉜다는 한 작가의 증언이 아니었다면,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눈으로는 글자를 읽고 있는데, 생각은 자주 길을 잃었다. 상상력 부족인지, 집중력 부족인지, 이야기의 흐름을 자주 놓쳤기 때문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지성들이 극찬한 "대단한" 작품의 수준 높은 지루함에 도전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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