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윤휴가 사형당한 후 조선은 침묵의 제국이 되었다"(7).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역사는 '인물'을 필요로 하고, 어떤 '인물'이 나느냐에 따라 시대의 운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역사의 숨겨진 줄기를 캐내고 있는 역사가 이덕일은 조선 중기, 우리에게는 '윤휴'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세상에 알린다. 윤휴는 북벌대의를 가슴에 품었고, 백성들의 민폐 해소를 꿈꾸었고, 신분제 해체를 단행하고자 한 개혁적인 정치가요, 비판적인 유학자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정적들에 의해 조용히 제거되고 말았다. 이후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철저히 금기시되었고, 그렇게 오늘까지 역사에서 잊혀진 비운의 '인물'이다. 윤휴의 운명으로 국운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운의 인물로 남은 윤휴의 운명은, 이미 쇠락해가는 조선의 국운을 상징적으로 예견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윤휴는 이런 시대를 개탄했다. 나라보다 당이 중시되는 시대. 군부보다 당수가 중시되는 시대. 국왕보다 스승이 중시되는 시대. 옳고 그름보다 유불리가 중시되는 시대. 윤휴는 이런 시대를 개탄했다"(107).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역사책에서 배운 '송시열'은  매우 훌륭한 인물이었다. '송' 씨 성을 가진 친구가 자신은 송시열의 몇 대 손이라며 틈이 날 때마다 자랑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역사가 이덕무의 <윤휴와 침묵의 제국>은 나의 짧은 역사 지식을 기초부터 다시 놓아야 한다는 경종을 울려주었다. 윤휴의 최대 라이벌로 등장하며, 그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인 기득권 세력이 바로 서인노론의 영수 송시열이었기 때문이다.

라이벌로 대립하며 윤휴와 송시열이 평생에 걸친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은 효종의 죽음을 둘러싸고 예송논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효종 국상 때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 조씨의 상복 착용 기간 여부를 놓고 논쟁이 발생한 것이다(83). 이것은 단순히 상복은 3년 입는 것은 옳으냐, 1년 입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송논쟁은 이미 이론의 논쟁이 아니라, 정치의 논쟁이며 권력의 논리가 되었기 때문이다(100).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에게 산림에 묻혀 학문에만 정진하다 조정에 들어와 실질적인 북벌 정책을 실현하고, 백성을 위한 사회 개혁을 단행하고자 한 '윤휴'는 눈엣가시요, 목에 걸린 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송시열은 양반 사대부의 계급적 특권을 절대시할 수 있는 사상이 담긴 주희를 절대화했지만(71), 윤휴는 그것에 반발하여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학문을 하고자 했다. "윤휴는 특정한 스승이 없었다. 경서를 통해서 직접 공부하니 공자가 스승이고 맹자가 스승인 셈이었다. 주희의 책도 보았지만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계 학자들과는 달리 주희의 눈으로만 경서를 보지는 않았다. 주희의 해석을 절대적으로 따르지도 않았다"(68). 

 
역사책을 읽어 보면, 역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성을 돌보고 나를 굳세게 하고자 하는 인물이 나오면 백성의 삶은 안정되고 나라의 힘이 자란다. 반대로, 권력을 휘어잡고 권세를 누려보자 하는 인물이 나오면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나라의 힘은 약해진다. 전자의 인물이 힘을 얻으면 국운이 흥할 것이지만, 후자의 인물이 힘을 얻으면 국운이 쇠하는 아주 단순한 이치, 그것이 역사에서 순환되고 있다. 윤휴가 개탄했다는 시대상에서 오늘 우리의 시대가 읽힌다. "윤휴는 이런 시대를 개탄했다. 나라보다 당이 중시되는 시대. 군부보다 당수가 중시되는 시대. 국왕보다 스승이 중시되는 시대. 옳고 그름보다 유불리가 중시되는 시대. 윤휴는 이런 시대를 개탄했다"(107). 대선과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걱정스러운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역사계의 기득권에 대항하여 '윤휴'와 같은 숨겨진 역사적 진실과 교훈을 찾는 일에 10년의 세월을 헌신하는 역사가 이덕무와 같은 인물이 있으니 희망을 아주 버리지는 않으려 한다.

역사는 오래된 미래라고 한다. 역사는 현실을 반추하고 미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리라. <윤휴와 침묵의 제국>은 역사가 말하지 않는 역사를 다시 말하게 하고, 잘못 말해진 역사를 바로 잡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것이 책에 대한 흥미를 넘어 역사가 이덕무를 계속 응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만 놓고 보자면 같은 말이 잔소리처럼 계속 반복되는 듯한 느낌 하나가 아쉬울 뿐, 잃어버린 '윤휴'를 다시 찾아주고, 그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송시열'이라는 정체세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하나 얻은 것만으로도 값진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역사를 보는 바른 시각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삶을 이끄는 튼튼한 방향키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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