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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ㅣ 마음으로 읽는 더클래식 고전 명작 시리즈 2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Bon 그림 / 더클래식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전화로 이 책을 읽어주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전화기로 너머로 매일 이 책을 읽어주던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는 진심을 다해 읽어주었고, 저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고생이 되고 처음 맞이한 나의 여름방학은 그렇게 <어린 왕자>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후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는 항상 <어린 왕자>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어린 왕자>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제 첫 핸드폰 번호는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별 '소행성 B612호'를 기념한 '8612'였고, 한때 제 닉네임은 '어린 왕자가 사랑한 장미'였습니다.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171).
우리가 가장 열광했던 부분은 바로 '길들이기'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사랑한 장미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 꽃이 그저 평범한 장미 한 송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몹시 슬퍼합니다. 바로 그때 사막의 여우가 나타나 어린 왕자에게 '길들이기'를 설명합니다.
사막의 여우는 '길들인다'를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 너는 나에게 수많은 아이와 다름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 않아. 난 네가 필요하지 않고, 물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지. 나도 너에게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기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165).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면 우리는 수많은 발소리 중에 그의 발소리를 구별하게 되고, 그가 만일 오후 4시에 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고, 4시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라고, 사막의 여우는 말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고백 대신 "이 안에 너 있다", "충전"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나를 길들여주겠니?", "너에게 길들여지고 싶어!", '너를 길들이고 싶어!"가 최고의 사랑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 왕자>를 읽으며 사랑을 배웠고, 어른들의 세계를 관찰했고, 또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무척이나 좋아한다"(46).
어린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 그 집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창가에는 예쁘게 핀 제라늄 화분이 놓였고, 지붕 위로 비둘기가 날아드는 멋진 장밋빛 벽돌집을 봤어요."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쉽게 떠올린다.
"시가 100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
그래야 비로소 어른들은 탄성을 지른다.
"정말 멋지겠구나."
이제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느낄 즈음 다시 읽은 <어린 왕자>는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놓였고, 지붕 위로 비둘기가 날아드는 멋진 장밋빛 벽돌집을 상상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몇 평대 아파트에 산다"고 말해야 "굉장하구나" 탄성을 지르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새, 친구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친구가 무슨 놀이를 좋아했는지, 나비 채집을 좋아했는지는 잊어버리고, 친구는 몇 살인지,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하는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내 인생의 책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책입니다.
<어린 왕자>는 언제 읽어도,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감동이 있습니다. 서점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그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고 나선 적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선물을 해서 지금은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지만, 소장하고 싶은 욕심에 일러스트가 예쁜 책을 만나면 꼭 구매를 하곤 했습니다. 한때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 원서를 구해 읽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더클래식'에서 발간된 <어린 왕자>는 한글판과 영문판이 세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쁜 양장본 안의 일러스트가 환상입니다. 그동안 만나본 <어린 왕자> 책 중에 가장 예쁜 책이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난 <어린 왕자>님에게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