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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2 ㅣ 신의 카르테 2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신주혜 옮김 / 작품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것, 그것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수이다"(170).
읽고나면 마음이 착해지는 책이 있다. <신의 카르테>가 그러하다. '하얀거탑'이 일본 의료계의 중심부에 선 의사들을 중심으로 의학계의 이면을 폭로했다면, <신의 카르테>는 일본 의료계의 주변부에 선 시골 병원을 중심으로 (가혹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상과 순수를 지켜나가는 의사들의 고군분투를 이야기한다.
많은 어린이가 장래 희망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꿈꾸는 것은 그것이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고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세의 수단으로, 성공의 지름길로 여겨질 만큼 보상과 명예가 따르는 일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직업군으로 꼽힌다. 그런데 만일 금전적인 보상이나 명예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떨까? 여전히 고귀한 정신으로 '고된 노동'의 의료 현장을 지켜줄 수 있을까? 자신이 의사 출신이기도 한 <신의 카르테>의 작가 나쓰카와 소스케는 바로 그 순수한 고된 노동의 의료 현장 이야기를 정감 있게 풀어나간다.
<신의 카르테> 2편은 시골 병원의 열악한 현실을 1편보다 더욱 밀도있게 묘사한다. '24시간, 365일 진료'라는 간판을 내건 혼조병원. 이 말도 안 되는 지방 병원의 간판 속에는 사실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실질적으로 혼조병원을 지탱하고 있는 왕너구리 선생님과 늙은 여우 선생님의 뜨거운 약속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약속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고장에 누구나 언제든지 진찰 받을 수 있는 병원을!"(119) 두 선생님의 그 뜨거운 약속 안에는 두 분의 숨겨인 아픔이 담겨 있다. 괴짜 의사로 통하는 순수 청년 '구리하라'는 두 분의 사연을 통해 이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두 분의 진심을 발견한다.
<신의 카르테> 2편은 유난히 '슬픈 이별'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70년을 부부로 지낸 노부부의 이별 장면과 모든 것을 희생하며 혼조병원을 이끌어온 의사 선생님이 부인과 이별하는 장면은 슬픈 이별이면서 동시에 너무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해 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는 의사들의 무력감은 늘 죽음의 현장에 함께해야 하는 의료진의 고통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결국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때, 오늘의 삶이 더욱 가치 있게 빛나고, 사랑만이 인생을 반짝거리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주인공 구리하라와 '장기부의 삼각관계'를 형성했던 절친 '신도'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흥미를 더한다. 잘 나가는 도시 병원에서 시골 병원으로 옮겨온 '의학부의 양심'이라 불린 신도 다쓰야는 밤낮도 없이 일하는 의사를 '훌륭한' 의사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진저리를 친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해야 한다고 하지. 이 나라의 의료는 미쳐 있어. 의사가 생명을 갉아먹으며 가족을 버리고 환자를 위해 일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세계. 밤에 잠도 못자고 몸이 망가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세계. (...) 스물 네 시간 자신의 담당 환자를 위해 뛰어다닌다니,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인간이야"(222-223). 피를 토하듯 격분하는 신도 다쓰야의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일본이 부러워졌다. 역으로, 일본은 처음부터 의사를 하나의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고, 의사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도외시 되며, 환자를 위해 24시간 뛰어다니는 것을 당연하겨 여기는 사고가 통하는 나라인가, 하는 놀라움 때문이다.
"아무리 가혹한 현장일지라도 내가 있고, 구리하라 군이 있어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소중한 존재를 껴안고도 의사를 계속하고 있는 신도 선생님이 있어요. 이보다 더 든든한 희망은 없습니다"(250).
언젠가, 은사 한 분이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들려주신 적이 있다. 젊은 시절,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발가벗겨져 침대 위에 놓인 자신의 육체가 고깃덩어리처럼 느껴졌다고 하신다. 꼼짝하지 못하는 몸으로, 자신의 몸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의사들의 눈빛과 말투와 손길을 느낄 때마다 그 치욕을 견디는 것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했다고. 병원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대체로 생명(몸)에 대한 예의가 없는 병원의 태도에 불쾌감을 경험할 때가 많다. 환자는 생명이 아니라 '돈'일 뿐이라 여긴다 해도, 그 소중한 '돈'에게 불친절하기까지 한 이 이상한 논리가 그렇게 불쾌할 수가 없다. 돈은 돈대로 내고 무시를 당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딘가에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것, 그것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수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왕너구리 선생님, 늙은 여우 선생님, 구리하라, 신도 같은 의사도 있다는 믿음을 갖고 싶다. 철부지 같은 순수함으로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구리하라와 신도에게 병원장의 한마디가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비단 의사만이 아니라, 어떤 삶의 자리,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가든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고, 세상이 아무리 추악하도 해도 구리하라와 신도처럼 끝까지 지켜가야 할 '이상'이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어떤 현장이든 현실에 발을 딛고 서되, 확신은 더욱 분명해지고 열정은 더욱 뜨거워지기를!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게 있지. 나는 그 상식을 깨고 이상만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이 싫어."
(...)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뒤 다시 흰 수염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이상마저 없는 젊은이는 더 싫어"(393-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