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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구름 - 하나님과 하나되는 기도
무명의 형제 지음, 유재덕 옮김 / 강같은평화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가끔 교회에서 '관상기도'에 대해 아느냐는 물음을 많이 받았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관상기도에 대해 읽고, 배웠다. '무명의 형제'에 의해 쓰여졌다고 알려진 <무지의 구름>은 "영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산문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4)고 한다. <무지의 구름>은 직접적으로 관상기도를 배우고 실천해볼 수 있는 교본 같은 책이다.
관상기도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무척 어려운데, 역자는 이렇게 정의내린다. "관상을 간단히 정의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영혼이 하나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7). 솔직히 책을 한 번만 읽어서는 관상기도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또 어떻게 경험되는지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관상기도는 '신비'의 영역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구름>이 집필된 시기적 배경을 보면, "신비주의가 한창 꽃을 피우던 14세기 후반 영국에서 집필된 작품"(4-5)이라고 소개된다. <무지의 구름>, 그러니까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기도)이며, 또 신비주의를 이끌었던 작품(기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며 내가 파악한 관상기도란,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한 훈련이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경험하는 마음 상태인 듯하다. "관상의 핵심은 하나님을 지향하는 순수한 의도 그 자체"(100)이며, 관상은 "하나님보다 못한 모든 것을 완변하게 망각하도록 만드는"(102)데, "올바른 관상자는 자신의 고통이나 행복에 무관심하며,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101) 바란다고 한다. "관상을 실천하는 데는 평정심, 영혼과 육체의 건강과 순수한 마음이 필요"(147)하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43), "간절한 사랑이라는 예리한 화살로 두터운 무지의 구름을 맞추"(44)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개념을 정리해보려 해도 관상기도가 무엇인지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신비의 영역에 속하는 일들을 사람의 언어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솔직히 아무리 곱씹어도 감이 잘 안 왔는데, 그나마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통한 설명이 조금 도움이 되었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마르다와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눅 10:38-39). <무지의 구름>은 이를 두고, "마리아는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잠시도 멈추고 싶지 않았"(88) "예수님은 마리아가 영으로 자신의 신성을 간절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88-89)고 설명한다. 또한 분주했던 마르다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마리아의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 볼 때, 관상기도는 일종의 '황홀경'의 상태 또는 '황홀경'의 경험으로 이해된다(231).
<무지의 구름>을 통해 알게된 '관상기도'에 대한 나의 결론은 한마디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신비주의의 영역에 속한 것이 늘 그렇듯이 '분별'의 문제가 따르고, 성숙한 신앙의 자세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신적 영역에 속한 신비적인 경험은 그 경험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인간(나)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또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무지의 구름>에서도 계속 경고하고 있듯이 우리는 '거짓 경험'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하나님이 아니라 경험 자체를 사랑하고 신봉하는 유혹에 걸려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으로 채워지며, 하나님과 하나됨을 맛볼 수 있다면 정말이지 그것처럼 황홀한 경험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지의 구름>에서도 경고하듯이, 신뢰할 만한 영적 조언자 없이 관상기도를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며, 신중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