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사회와 그 적들 - 좋은 시민들이 들려주는 우리 사회 이야기
김두식 외 지음 / 알렙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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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가올 2012년을 준비하라?

 
아는 동생이 5개월째 월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등에 사연을 올려 집주인의 명예가 훼손(?)되면 법적으로 불리해진다고 하니 내용은 생략하지만)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동분서주하던 동생은 맞닥뜨린 현실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나라 법은 집주인 편이야!" 자신이 법을 더 잘 안다(?)고 말하는 그 집주인은 오히려 느긋하단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소시민의 생활에 파고드는 우리 사회의 불량지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여당이 다시 정권을 잡자 부자들만 잘 사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을 때, 내가 바로 그 부자에 속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말문이 막혔던 적이 있다. 소시민이 체감하는 사회의 불량지수는 정책이 아니라, '뇌구조'를 완전히 갈아엎어야 비로소 길이 좀 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막막한 수준이다.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은 불량 사회에 대항하는 지식인들의 '말'을 담은 책이다. (완전히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이런 목소리를 '팔아' 먹고 사는 무리에 대한 불편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과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하는 지식인들의 '말'이 고맙다.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은 잘난 척이 아니라, 그 진정성이 느껴져서 더 고마웠다. (섣부른 환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외치고 싶다.)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은 불량 사회에 맞서 개혁과 대안을 말하는 지식인들을 불량 사회의 '적'으로 간주하며, 이 책에 목소리가 실린 열세 명의 인터뷰어들을 '좋은' 시민이라고 명명한다. 불량 사회의 적을 자처하는 '좋은' 시민이라는 것이다. "이들 열세 명의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 더 나아가 2012년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약육강식의 '승자 독식 사회'로 갈 것인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복지 국가'로 갈 것인가?" 이것이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이 다루는 주요 쟁점이면서, 골자이다. 핵심 키워드는 '복지'.

"좋은 사회가 뭔가요?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사회인가요? 아닙니다. 어떤 사회에서 한 명이 모든 걸 가지고 나머지가 거지처럼 살아도, 그 한 명이 엄청난 부를 소유한다면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는 부자 나라일 수 있습니다"(22, 장하준 교수님의 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복지를 설명하며, 무상 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아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그 아이가 입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26)까지 생각하는 장하준 교수님이 너무 든든하고 고마워 눈물까지 날 뻔했다. "돈 없는 애들한테 평생 갈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돈 있는 애들도 그냥 무상 급식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왜 못 알아듣나요?"(27). 정말 왜 못 알아 듣나요!!! "한국 사람들은 복지가 돈이 남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하며, 우리가 가진 '복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이렇게 꼬집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지' 하면 미국의 선별 복지만 떠올립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하듯이, 정말 굶어 죽을 것 같은 몇 사람에게 몇 푼 쥐어주는 식으로요. 무상 급식에 반대하는 이들한테도 바로 복지에 대한 이런 천박한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해요"(27). "천박한 인식"이라는 표현에서 솔직히 질끔했다. 내가 가진 복지에 대한 인식도 그 범주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을 읽고 나니, 먼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 입장부터 분명히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2012년 대선은 선별 복지(시장 복지) vs. 보편 복지 구도가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라고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은 진단한다. 2012년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책임있는 투표를 해야 한다. 단순히 수동적인 투표가 아니라,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먼저 깨닫고, 뜻을 세우고, 행동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모든 국민이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모두 함께 잘 사는 좋은 사회를 꿈꾸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가 해야 할 첫째 행동은 "복지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아주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복지 국가가 만들어지려면 복지 세력이 있어야 하죠. 복지 국가를 원하는 시민과 복지 국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지키려는 정치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복지 동맹을 형성하고 버틸 때, 복지 국가가 가능합니다"(185, 최태욱 교수님의 말). 우리가 옳다고 믿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낼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도정일 상임대표는 "책 읽기를 매개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바꾸어낼 시민의 힘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이 내게는 그러한 책 읽기가 되어주었다. 이지아-서태지 사건의 폭로가 젊은 세대의 투표율을 낮추려는 정치권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루머에서도 배울 수 있듯이, 불량 사회를 고집하는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깨어있는 관심'이 아닐까 한다.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의 목소리는 곧 나와 너,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될 쟁점들이다. 함께 배우는 자세, 고민하는 자세, 참여하는 자세로 읽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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