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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모성애와 맞짱을 뜨자는 것일까?
친한 여자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겨본 경험이 있는가? 내가 했던 가장 쓰라진 경험은 죽기 살기로 나를 좇아다녔던 남자가 친한 친구와 사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것이다(그들은 졸업 후에 결혼도 했다). 뺏앗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 상대가 친구라는 것이 몹시도 씁쓸했다.
<도둑 신부>는 철저한 계산과 거짓으로 친구를 이용하고,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친구의 남자까지 가로채가는 '팜 파탈' 지니아를 축으로 그녀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상처입은 세 여성의 삶과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왜 나는 지니아를 보며 안젤리나 졸리를 떠올렸을까? 브래드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톤 커플의 사랑을 지켜보며 응원했던 내게는 안젤리나 졸리가 '나쁜 년'이다. 배우로서는 그녀를 좋아하지만, 내 감정은 지금도 제니퍼 애니스톤에게만 이입된다. <도둑 신부>를 영화화하며 내 맘대로 가상 캐스팅을 해본다면 지니아 역은 안젤리나 졸리이다.
광고만 보면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지니아'가 이야기의 중심일 거라 예상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그녀에게 상처입은 세 여성이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1권을 다 읽어가는 내내 지니아는 도대체 언제 본격적으로 등장할까 궁금해하며, 이제나 저제나 그녀의 등장을 기다려왔는데 끝까지 그녀는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핵이면서 동시에 주변부로 남는다. 오히려 <도둑 신부>는 세 명의 여성이 지니아에게 어떻게 '멍청하게' 당했는지에 초점을 둔다. 그 과정에서 그녀들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이 '오늘' 그녀들의 삶과 상처를 규정짓는 단초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긴 서사가 이어진다.
작고 외소하지만 잔혹한 전쟁에 관심이 깊은 냉철한 역사학자 토니, 점성술과 영적 에너지를 신봉하며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는 듯한 캐리스, 당당하고 거침없는 시원시원한 사업가 로즈,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점심을 같이하는 절친이다. 같은 학교 동창이기는 하지만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듯한 개성 강한 이 세 여성이 친구가 된 것은 모두 '지니아' 때문이다. 지니아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며 종국엔 남자(사랑)까지 뺏앗긴 쓰라린 상처가 이 세 여성을 엮는 끈이다. 어느 날, 이미 죽어 장례식까지 마친 지니아가 그녀들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그들의 사연을 재구성해나간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1권과 300페이지를 넘는 2권을 읽어나가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팜 파탈 지니아도, 그녀에게 멍청하게 당한 세 명의 여성도 아니라 엉뚱하게도 거침없는 저자의 입담(필담)이었다. 이외수 선생님이 쓰신 <글쓰기의 공중부양>이라는 책에 보면, 단어에는 생어와 사어가 있는데, 생어는 오감을 각성시킨다고 설명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글에 신선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장점을 가진 생어를 활용하라는 가르침이다. 예를 들면,
"그놈은 흉기로 자주 자해를 하는 습관이 있다",
라는 문장보다는,
"그놈은 뻑하면 회칼로 자기 배를 그어대는 습관이 있다"는 문장을 구사하라는 것이다.
<도둑 신부>의 흡입력은 토니, 캐리스, 로즈라는 세 여성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침없이 팔닥거리는 '생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생어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빠른 템포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든다.
이 거침 없는 필력으로 지니아가 아니라, 세 여성에게 중심을 두고 있는 저자의 타킷은 모성 안에 갇혀 가부장제에 눌려 있는 여성성(여성의 자아정체성)의 각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해방을 가져오는 가장 큰 계기는 전쟁이었다고 배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전쟁 경험을 가지고 있다. 토니는 전쟁을 연구하는 역사 학자이기도 하다. 또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반면, 여성들은 모두 2개의 이름, 즉 2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토니의 다른 이름은 그녀의 이름을 거꾸로 읽은 '트몬레프 니토'이다. 캐리스의 다른 이름은 나약하고 상처입은 과거를 봉인해둔 '캐런'이다. 로즈의 다른 이름은 카톨릭과 유대인 사이의 경계에 선 '로절린드 그린월드'이다. 심지어 로즈의 쌍둥이 딸도 그녀들을 호칭하는 다른 이름이 있고, 캐리스의 딸도 캐리스가 지어준 '오거스타'라는 이름과 오거스타가 직접 바꾼 '오거스트'라는 이름이 있다. 왜 <도둑 신부>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2개의 이름, 즉 2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을까? 현재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지니아는 그녀들의 억압된 자아가 하나로 합쳐진 '괴물'일까?
토니와 캐서린, 로즈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모두 남성을 모성애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토니는 외인부대 같은 웨스트를, 캐리스는 병역을 기피하고 도망 중인 빌리를, 로즈는 바람둥이 남편 미치를 엄마처럼 품어주고, 돌봐주며, 기꺼이 뒤치닥거리를 한다. 심지어 토니와 캐서린과 로즈는 서로에게도 엄마 같은 친구이다. 재밌는 것은 그녀들이 모성 안에서 자발적으로 남성들에게 소비되는 것은 '사랑'이지만, 지니아라는 여성에게 소비되는 것은 '상처'요 '고통'이 된다. 그녀들을 소비하는 남성들은 '사랑'이지만, 그녀들을 소비하는 지니아는 '악녀'인 것이다.
토니는 지니아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도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다. 웨스트 때문에 가슴 아파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1권, 316). 그녀는 지니아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상처투성이 웨스트를 자기보다 더 걱정한다. <도둑 신부>는 뿌리 깊은 모성의 환상에 제대로 맞짱을 뜨는 분위기이다. 지니아에 빠져드는 남자들, 지니아가 가진 치명적인 매력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남자는 자기를 돌보는 엄마가 아니라, 자기를 필요로 하는 여자에게 마음이 간다는 것이다. 지니아의 수법은 한없는 모성애가 아니라, "결핍과 굶주림과 텅빈 동냥 그릇의 이미지"(2권, 152)이다. 미치가 무엇을 요구할 틈도 없이 미치에게 무엇이든 채워주었던 로즈의 뒤늦은 각성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는 베풂과 용서와 구원을 받기만 하는 데 질려 자기도 조금 베풀고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무릎 꿇은 미녀보다 더 좋은 게 무릎 꿇고 고마워할 줄 아는 미녀였다"(2권, 153).
<도둑 신부>는 여기저기서 페미니즘적 관심을 드러내며,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면, 성공한 기업가로 여사장 노릇을 하는 로즈의 고백을 들어보자. "여사장 노릇은 골치 아프다. 여자들이 그녀를 상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다. 여자들은 그녀를 자기와 똑같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언제쯤, 떨어져 나갈지 궁금해한다. (...) 그런 그들한테 커피라도 한 잔 얻어 마시려고 했다가는 이것 보세요,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죠라는 이런 반응이 나온다. (...) 내가 엄마 몸종인 줄 알아요? 그녀는 반항기로 접어들자마자 어머니한테 이렇게 대들곤 했다. 꼭 그 짝이다. 그랬던 여자들이 남자 상사한테는 군소리 없이 커피를 대령한다. (...) 이제는 여자가 여직원을 고용하면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1권, 166-177).
"지니아는 어디에 있건 항상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2권, 317).
어떤 측면에서 보면, 지니아는 캐리스와 로즈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데도 그녀들이 직접 처리하지 못하는 빌리와 미치를 치워준 셈이다. (저자가 웨스트만 다시 돌려준 것이 의미심장하다.) 각각 빌리와 마치와의 관계를 '객관화'해서 보지 못했던 캐리스와 로즈는 살아돌아온 지니아를 계기로 그 관계를 다시 반추하며 자기 자신과 삶을 찾아간다. <도둑 신부> 지니아가 각성시키고자 하는 대상은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진 남성이 아니라,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지니아 때문에 상처입는 그녀의 친구, 여성이다. 그 상처가 아무리 크고 아파도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들을 사로잡고 결국 그들의 삶을 파괴했던 '도둑 신부' 지니아는 악녀가 아니라, 모든 여성을 대신해 선봉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여장군일지 모른다. 여러 모양으로 다시 환생한 지니아는 지금도 어디에 있건 항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 모두 그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도둑 신부> 지니아는 오늘도, 피를 빨리고 소비되고 있으면서도 모성의 환상으로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자 하는 여성의 집을 찾아, 그 문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