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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ㅣ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14
하인츠 야니쉬 글, 헬가 반쉬 그림, 김서정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1년 5월
평점 :

흐르는 강물이 있습니다.
다리가 있습니다.

왼쪽에서는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다리를 건너오고,
하필 그때 오른쪽에서는 거인이 건너오고 있습니다.
너무 좁아서 둘이 같이 지나갈 수 없는 다리,
그러나 둘은 서로 물러날 생각이 없습니다.

커다란 곰과 거인은 어떻게 다리를 건넜을까요?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함께 풀어야 할 수수께끼!
라가치 상 수상 작가인 하인츠 야니쉬의 작품이다. 라가치 상(Ragazzi Award)이 무엇인지 몰라 검색을 해보니 네이버 지식사전이 이렇게 답변을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인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에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출간된 어린이책 가운데 각 분야의 최고 아동서를 대상으로 주어지는 상이다." '상'(賞) 이름은 낯설었지만 설명을 들으니 상의 권위가 느껴진다. 솔직히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가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나도 동화작가가 되어볼까?'였다. 스토리 라인이 단순하다 생각되니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교만한 마음을 먹어본 것이다. 그러나 나의 교만을 곧 반성하였다. 아이들 동화는 이야기의 메시지(교훈)도 중요하지만,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리>의 이야기는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다리가 하나 있고, 그 좁은 다리의 한 가운데서 하필 커다란 곰과 거인이 만났다. 누구 하나가 양보를 해서 뒤로 물러난다면 이야기는 훨씬 단순하고 깔끔하게 끝났겠지만, <다리>에서 만난 커다란 곰과 거인은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다. 둘 다 절대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누구 하나에게 양보를 강요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렇게 서 있는 동안 다리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이다. 누구도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서 해결책을 찾는 것! 사실 "먼저 양보하라"고 쉽고 빠른 가르침을 주지 않고, 절대 양보하지 않은 채로 함께 다리를 건널 수 있는 해결책을 찾으라는 가르침이 무척이나 신선하다. 충격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어른들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는 "먼저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다"라는 식의 가르침이 우리의 게으른 편의주의는 아니었는지 반성해보게 되었다. "이것이 마땅하다" 강요하지 않고, 고민할 꺼리를 던져주며 생각을 유도하며,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방식이 참 멋지다!
커다란 곰과 거인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이런 저런 해결책을 내놓기 시작한다. 서로 코웃음을 치기도 하고, 노려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대화'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곰이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내고, 거인은 그 의견에 흔쾌히 동의한다. 기발한 해결책을 찾아낸 커다란 곰과 거인은 (그런 과정을 통해) 좋은 친구가 된다. "고집과 미움을 버리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는 거인과 곰의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라고 한 아동문학가 김서정 선생님이 해설은 얼마나 정확한지, 그 깊은 의미가 생각할수록 감탄스럽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로만 우리가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은 금방 낙원이 될 듯하다.
이렇게 심오하고 어려운 메시지(교훈)를 이 동화는 쉽고 빠르게, 그리고 예쁘고 재밌게 가르쳐준다. 이야기가 가진 힘과 그림의 효과가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격조 높은 일러스트와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 안에 함께 풀어내야 할 협동과 공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다리>, 볼수록 고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