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스캔들 -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화 이야기 명작 스캔들 1
장 프랑수아 셰뇨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명화가 보인다!

 
스캔들이라고 하면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왁자지껄 수근수근거리는 것이 제맛이지만, 이 <명작 스캔들>은 햇볕 잘 드는 창가에 향긋한 차 한 잔 마주하고 앉아 조용히 빠져들고 싶은 이야기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여인의 옷을 벗긴 예술가가, 방사선 같은 예리한 시선으로 유방암을 진단해낸 예술가, 세계를 경악에 빠뜨린 모나리자 도난 사건, 모작으로 평론가들을 조롱한 희대의 위조범까지 가히 세기의 스캔들이라 할 만 미술계 스캔들이 담백하게 폭로된다. 평소 명화나 화가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까지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책을 계기로 명화와 화가의 삶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그림을 보는 안목까지 깊어질지 모를 일이다.

<명작 스캔들>을 읽으니 '재밌다'는 느낌에 '만족함'이 더해지는 공식이 무엇인지 알 듯하다.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즐거움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무언가 얻어지는 유익함이 있을 때, 우리는 깊이 있는 재미, 만족할 만한 재미를 느끼고 뿌뜻한 감상에 젖게 되는 것이리라. 내게 <명작 스캔들>이 그러했다.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스캔들에서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거나 아니면 감추어진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이로써 교양까지 훌쩍 자라나는 뿌듯함이 있다.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명작 스캔들>에 등장하는 첫 그림은 배심원 앞에서 한 여인이 발가벗겨지는 순간을 그린 '배심원 앞의 프리네'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남성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태어나게 했지만, 여성은 얇고 가벼운 천을 몸에 둘러 간접적으로 몸매가 드러나게 하거나, 상반신은 드러냈지만 알몸 전체를 노출한 적은 없었다"(17)고 한다. 하지만 프락시텔레스는 대담하게 여성에게서도 베일을 벗겼다. <명작 스캔들>이 가장 먼저 폭로하는 명화 스캔들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여인의 옷을 벗긴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이다(17-18). 스캔들 옆에 따라붙은 사족이지만, 예술의 위대함과 역사를 보는 다른 시각을 배울 수 있는 한 문장에 색칠을 해두기도 했다. "그리스를 침략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인들은 프락시텔레스를 추모하며 그리스에서 약탈한 덤프트럭 한 대 분량의 동상을 고국으로 가져갔다. 로마의 귀족들은 저택의 현관과 정원을 그의 동상으로 장식하고 싶어 했다. 무력으로 정복당한 그리스는 그들의 찬란한 예술 덕분에 야만적인 정복자를 문화적으로 오래도록 지배했다"(15)고 전한다.

액자 보수와 그림의 보호 작업을 담담한 목수 팀의 일원이었던 이탈리아의 아들 '빈첸초 페루지아'가 1911년 8월 21일 아침 루브르 박물관의 살롱카페에 결연히 침입하여 모나리자를 훔쳐낸 이 믿지 못할 세기의 헤프닝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또 그 어처구니 없음 때문에 더 놀라고 주목하게 되는 명작 스캔들이었다. 

라파엘로 산치오는 단지 본 것을 그렸을 뿐인데, 워싱턴 D.C. 혈압센터와 조지타운대학의 에피날 박사는 그림에 검푸른 빛이 도는 그녀의 피부에 주목했다. 그는 화면을 통해 그녀의 건강을 정밀하게 검진하여 자세한 결과를 유명한 의학 전문지에 게재하며, "내가 분석한 바로는 라파엘로가 혁신적인 기법으로 유방암의 증상을 설명하고 있다"(131)고 말했다. 라파엘로가 사랑한 이 '아름다운 빵집 여인'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보다 겨우 2년 남짓 더 살았다고 하는데, 라파엘로의 그림에 이미 자신의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라파엘로의 이 명작 스캔들은 방사선 같은 예술가의 예리한 시선이 암을 진단한 최초의 사례로 남게 되었다(132).

화가의 삶에 대해 알게 될 때, 우리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그 천재성의 너무 늦은 발견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미술픔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빨래터'의 화가 박수근 선생님의 삶처럼, 미술사에는 살아 있을 때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너무도 고단한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화가들이 많다. <명작 스캔들>에서 또 한번 그런 애잔한 화가들의 인생을 만났다. 불행이 천재적인 광기를 만들어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불행했던 카라바조와 고흐, 가여운 사람 폴 세잔, 죽어가면서 생애 단 한 번 그린 자화상의 가격이 "장례행렬이 자선병원에서 묘지까지 가는 사이에 이미 그의 그림 값이 뛰기 시작했다"(313)는 앙리 마티스가 그들이다.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불행 속에서 탄생한 명화의 이야기는 그만큼 값지지만 생각할수록 애잔하다.

<명작 스캔들>을 읽으며 명화를 보는 안목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한 것은, 예술가들이 표현한 인간의 육체, 머리가 잘린 골리앗처럼 자주 자신의 모습을 희생자로 그려넣은 카라바조,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에서 벗겨진 얼굴 가죽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작 스캔들>의 저자 장 프랑수아 세뇨는 유명한 저널리스트라고 하는데, 미술계 '가십'까지 차원 높은 한 편의 드라마로 재구성해냈다. 음악에서는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이 그러하듯, '작품'의 배경을 알고 감상할 때 그 작품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만, 명화는 화가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예술가들의 인생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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