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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고은옥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4월
평점 :
나는 언제 뜨거웠을까? 무엇 때문에 뜨거웠을까?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까?
살면서 심장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온몸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분노, 내 심장 안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고통, 그것은 무엇 때문의 분노였고, 어떤 종류의 고통이었나?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피가 끓어본 적이 있는가? 조각으로 나눠어진 현대인들은 공공의 이상을 잃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에 등장하는 꼬마 주인공은 심장이 불꽃에 휩싸이는, 아니 불이 심장을 집어삼키는 경험을 한다. 그 불꽃을 경험하는 순간, 그 꼬마는 '성장'한다. 그의 온몸을 삼켜버린 삶의 불꽃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작가 '베벌리 나이두'를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만났지만, 그녀는 꽤 유명한 작가인가 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자신의 나라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불평등을 깨닫고 직접 저항 활동에 뛰어든 참여적 작가이다. 흑인과 백인 청소년들을 위한 범상치 않은 소설을 많이 썼다는 그녀는 이번에도 아프리카의 문제를 소재로 결코 가볍지 않은 '폭풍 성장소설'을 내놓았다.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1950년대 케냐, 그리 멀지 않은 시대에, 그리 멀지 않은 땅에서, 우리가 모르는 불평등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음을 고발한다. 당시 케냐에서는 백인들에게 빼앗긴 땅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흑인들이 모여 '마우마우'라는 집단을 결성했다. '마우마우'는 폭력으로 백인들에게 대항했다. 마우마우는 32명의 백인 정착민을 살해했고, 이 때문에 1950년 10월에 비상사태가 선포된다. 그리고 반 마우마우들에게 1800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살해당했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은 채) 수백 명이 실종됐고, 영국 경찰은 적어도 1만 2000명(어쩌면 2만 명)에 달하는 마우마우와 용의자들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적어도 15만 명의 키쿠유족 사람들이 마우마우 지지란 죄목으로 수감되었고, 1090명의 키쿠유족 남자들의 목이 매달렸고, 30명의 여성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210-211). "독립 투쟁이 일어났던 영국의 다른 어떤 식민지보다 케냐에서 훨씬 더 폭압적인 진압이 이루어졌다." 아직은 '동시대'라고 할 수 있는 '그때에' 벌어진 실제 역사이다.
이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 두 소년이 있다. '무고'와 '매슈'는 친구처럼 지내지만, 그들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장벽이 있다. '무고'는 '종'(하인)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흑인 소년이고, '매슈'는 주인의 아들인 백인 소년이다. 이 둘은 이 서로를 가로막는 장벽을 극복하고 진정한 우정을 쌓아가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는 매슈와 무고가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백인(영국인)들은 증명서라는 서류 한 장으로, 합법적(?)으로 아프리카 땅을 삼켜버렸다. 그곳에서 '원래' 살았던 사람들은 조상들의 무덤을 보여줬지만, 그 증명서에는 이 남자가 땅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이 땅이 그 남자의 소유라고 쓰여 있었다. 백인들은 '할아버지들의 땅이자 신성한 장소였던, 조상 대대로 키리냐가산(케냐) 아래에 자리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땅'을 빼앗아 울타리를 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종'으로 만들었다. 잃어버린 땅과 자유를 찾으려고 결성된 '마우마우'와 '마우마우'의 출현을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그곳에서의 권리와 풍요를 지켜가려는 백인들 사이에 생명을 건 싸움과 긴장이 가득하다. 땅과 자유를 찾으려는 동족과 주인(백인)과의 신의(우정)를 지키고 싶은 무고의 갈등, 자신의 잘못으로 무고 가족을 큰 위기로 몰아넣은 매슈의 고통이 큰 울부짖음이 되어 우리 마음을 울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현명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가장 안타깝게 만드는 인물은 무고의 아버지인 '바바'이다. 바바의 이름 카마우는 '조용한 전사'를 의미(53)한다. 바바는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와준구의 언어를 배워라! 그들이 가진 힘의 비밀을 배워라! 그들을 쫓아낼 방법을 배워라!"(52) 바바는 아버지를 이렇게 말한다. "바바에겐 꿈이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와준구의 지식을 배워 오는 것. 그러면 자식들은 땅을 되찾는 방법을 배워 올 것이라는 믿음! 또한 와준구도 우리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것이라는 기대!"(205) 바바가 이런 꿈을 꾸었던 것은 '그들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바의 방법이 옳았을까? 여전히 옳은 것일까?
마우마우의 활동과 이에 대항하는 백인들의 무자비함을 겪으며, 무고의 심장은 뜨겁게 타오른다. 그는 이제 어느 길로 가게 될까? "하지만 이제 나는 아이가 아니었다. 바바가 없어 이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싸카나 위야씨, 즉 우리들의 땅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형과 다른 사람들에게 합류하라는 부름을 받게 된다면, 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온몸 깊은 곳에서 맹령하게 타오르는 불길에 몸을 떨었다. 그 불이 모든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심장 안에서 타는 불길을 막아 내는 법을 나는 알 수 없었다"(209).
책의 내용과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라는 제목을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작가가 던져주고자 하는 질문은 케냐 땅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자신과 가족과 동족이 처한 현실에 눈을 뜨며 맹열하게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이는 무고와 자신이 낸 불 때문에 무죄한 사람이 고통 당하는 모습을 보고 불 붙은 듯 고통스러워 하는 매슈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삶에 대해, 우정에 대해, 믿음에 대해, 얼마나 뜨거울 수 있느냐고 묻는 듯하다. 무엇보다 '옳음' 때문에 한 번이라도 뜨거웠느냐 묻고 있는 듯하다.
내용에 비하면 제목은 다소 생뚱맞아 보이고,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 스펙터클한 내용은 아니지만, 성장소설을 통해 맞닥뜨리게 되는 삶의 진실과 질문(의문)의 문학적 수준은 High-level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