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 열일곱
한창욱 지음 / 예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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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지 못할 상황은 없다(249).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중학생 시절 참고서를 사기 위해 서점엘 들렀는데, 딱 봐도 노동을 하시는 분이겠구나 생각되는 아저씨 한 분이 서점 안으로 들어오셨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위해 참고서를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 녀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버지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영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어떤 책을 사주어야 도움이 되는지 서점 주인에게 물으셨다. 그분에게는 꽤 목돈이었을 값을 지불하고 몇 권의 참고서를 받아든 아저씨는 "이걸 사주면 우리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까"라고 혼자 물으시며 문을 열고 나가셨다. 나는 진심으로 그분의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주기를 빌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어쩌면 아저씨의 소원은 이루어지기 힘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내게 있었던 것 같다.

부모의 인생이 곧 자녀의 인생이 되는 것이 세상이다. 세상은 언제나 그랬다. 그나마 지난 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은 가난을 모면하고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왔지만,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진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멋지다 열일곱>에서 나는 희망을 읽었다.

<멋지다 열일곱>은 아주 영리한 책이다.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 청소년의 꿈을 응원하는 '자기계발서'를 소설의 서사와 함께 엮어냈다. 그 '목적성'이 이 소설을 차별되게 하지만,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결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목적성이 두드러진다.

<멋지다 열일곱>은 뜨거운 책이다. 집을 '지옥'이라 부르고, 마을 뒷산 정상에 자리한 정자를 '천국'이라 부르는 "천국의 아이들"(139), 어디에서도 살가운 돌봄을 받지 못하는 그 달동네 아이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가진 책이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나 주제로 삼았었을 법한 'old'한 느낌도 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초등학교 앞에서 튀김집을 하시는 어머니,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누나, 한때 잘나가는 농구선수였으나 부상으로 꿈이 있는 미래를 잃어버린 '재하'가 있다. 청각장애인이었던 아버지가 마을버스에 치어 숨지고, 어머니마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뒤, 열네 살의 나이에 두 동생(그중 한 명은 선천성 청각장애아이다)을 돌보아야 하는 소년 가장이 된 '창수'는 재하 친구이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부당하게 임금을 갈취당하는 모습을 보고 '변호사'를 꿈꾸었던 창수는 당장 먹고살길을 찾아야 하는 현실에 희망을 거세 당한 채 '배달민족'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멋진 바이크(두카티 999R) 하나 장만하는 것이 유일한 꿈인 재하는 그럭저럭 하루를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재하 앞에 '다연'이가 나타난다.

<멋지다 열일곱>은 차가운 책이다. '열일곱'을 뜨겁게 응원하지만, 꿈은 현실에 발을 딛고 서야 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한다. '예정된 불행'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재하와 창수 앞에 '다연'이를 보내 '드림레이스'를 시작하게 만든다. 어느 날, 재하를 찾아온 다연이는 '드림레이스'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드림레이스'는 다연이를 비롯한 독서반원 친구들이 꿈을 성취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었다. 다연이는 3퍼센트 이내에 드는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항목이 미션으로 주어지는 '드림레이스'에 재하를 초청한다. 재하는 '드림레이스'의 정식 회원이 되기 위해 일곱 개의 미션을 차례로 수행해나간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꿈을 만나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길로 안내된다.


"선택받는 삶을 살지 말고 선택하는 삶을 살아라!"(60)

<멋지다 열일곱>에서 내가 찾은 성공한 인생에 대한 정의이다. "진정한 자유인이란 떠돌아다니는 여행자가 아니라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래. 내가 오늘 무슨 일을 할지, 누구와 함께 무엇을 먹을지, 영화를 볼지 연극을 볼지, 어디서 잠을 잘지 등등을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사람이 진짜 자유인이라는 거야!"(60)

무조건 공부하라는 백마디보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열일곱의 가슴을 흔들어보면 어떨까. 대학에 지나치게 안달하지 말고 보다 긴 안목으로 인생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떨까. 꿈을 잃어버린 어른들 때문에 '열일곱' 청춘까지 꿈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꿈을 이루지 못할 상황 따위는 없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다. 열일곱이기에, 열일곱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아직까지 나 자신은 비록 '열일곱'에게 모델이 되고 등불이 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이런 책이 있어서 행복하다. 뜨거운 가슴으로, 그러나 보다 냉정하고 영리하게 '열일곱'에게 다가가는 이 책을 나는 응원한다. 멋지다! 열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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