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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세계사 - 음식, 인류 역사 1만 년을 가득 채운 그 달콤 쌉싸래한 이야기
주영하 지음 / 소와당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매일 같이 식탁에서 만나는 음식들 속에는 정치와 경제가 오롯이 담겨 있음을 발견합니다"(159).
매일 마주하는 일상적인 음식들 안에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코드'가 숨어 있다는 것이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이 책을 보며 생각해보니, 선악과를 한 입 깨어물은 하와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틀어진 것을 생각하면 인류와 음식과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맞기는 맞나 봅니다. 바다 건너 일본의 재난이 당장 우리 식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보이는 요즘, <맛있는 세계사>는 국경 없이 유통되는 음식과 국제관계의 역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맛있는 세계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음식보다 긴 역사를 가진 '빵'에서 시작하여 치즈, 국수, 소시지, 사탕, 피자, 케밥, 초콜릿, 커리, 햄버거 등 열 가지 음식이 우리 곁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맛있는 세계사>가 풀어놓은 열 가지 음식은 이제는 우리의 '주식'이라고 할 만큼 친근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태생지는 우리 땅이 아닙니다. 이 음식들의 탄생은 문화와 기술이 집약되어 있고, 이들은 모두 '이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맛있는 세계사>를 읽으며 '음식의 역사'를 앎과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세계사까지 읽어볼 수 있습니다.
<맛있는 세계사>가 보여주는 음식의 역사는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처럼, 맛나고 재미난 이야기가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습니다. 꼭 세계사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상식의 지평을 넓히려는 목적으로 읽어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적어도 7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빵(9) 앞에서는 어떤 위엄이 느껴지고, 트럼프 게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식사할 겨를이 없어 빵 사이에 햄이나 채소를 끼워 먹은 존 몬테규 샌드위치 백작의 이야기(22)는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를 알게 해주고, 유럽 인구의 4분의 1을 앗아간 페스트의 재앙에서 유럽을 건진 것이 치즈(36)였다는 사실은 의외이고, 한 번도 그 태생에 대해 궁금중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탕이 아랍인의 명절 음식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콜라와 커피와 같은 음료가 처음에는 종교적인 수련인들을 위한 각성 음료(152)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된 사실입니다. 카페인이 함유된 열매나 음료를 마시면 피로와 잠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제가 들었던 속설에 의하면 미국은 기독교와 함께 중독성이 강한 '코카콜라'를 제일 먼저 가지고 들어가 그 지역을 문화식민지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실은 이와 좀 다르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맛있는 세계사>에 의하면, 콜라가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인데 당시 미국의 참모총장이었던 조지 캐틀릿 마셜은 코카콜라를 자신의 병사들이 마음껏 마실 수 있도록 전쟁을 치르는 세계 각지에 총 64개의 공장을 세우도록 했다는 것입니다(153-154).
책을 마치며 저자는 "인류의 역사는 맛있는 음식을 누군가가 독차지하기 위해서 싸운 시간인 듯" 하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매일 같이 식탁에서 만나는 음식들 속에는 정치와 경제가 오롯이 담겨 있음을 발견합니다"(159). 백배 공감합니다. '청소년'을 위한 교양도서로 제작되었는지, 이 책은 이해를 돕기 위한 지도와 사진이 풍부하고, 친절하게도 '생각해야 할 거리'까지 짚어줍니다. 특히 마음이 가는 대목은 '착취와 불공정 무역'에 관한 부분입니다. 일례로, 우리가 먹는 달콤한 초콜릿에는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 당하는 카카오 농장의 어린아이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카카오 농장에서는 아이들이 17-18시간씩 일을 하는데, 심지어 이 어린이들은 초콜릿을 한 조각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129). 이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패스트푸드까지 "맛있는 음식이 반드시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음식은 아니라"는 저자의 표현이 마음에 남습니다.
처음 기대치를 생각하면 무엇인가 좀 더 '깊이'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살짝 생기지만, 부담 없는 분량이고 서체도 시원시원하고 사진도 있어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가볍게' 읽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상식의 지평도 넓히고 풍부한 화젯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