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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지금껏 선량하게 살아오신 당신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되었을까? 재밌는 것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가 다음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인류의 보편적인 믿음이라는 것이다. <갈매기의 꿈>에서 리처드 버크가 "우리는 이 세계에서 배운 것을 통해 다음 세계를 선택한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천국이든 극락이든, 지옥이든, 환생이든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하는 장치 역할을 한다. 이 생이 다가 아니라는 믿음이 오늘 착한 씨 하나를 더 심도록 하고, 비록 이 땅에서는 형통한 삶을 산 악인이라고 해도 죽어서는 심판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오늘의 억울함을 견디게 한다. 한마디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어쩌면 사후세계를 부정하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 믿고 싶은 마음은 '제멋대로' 살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신과 함께> '저승편'의 이야기는 인과응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권선징악'이다. 그런데 그 포멧이 신선하다! 네트즌 사이에 쟁쟁한 입소문이 돌 정도로, 속되게 말해 "먹히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전통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현대 사회를 에둘러 풍자하면서 고전적인 권선징악을 "재해석"하는 힘이 있다. 모르던 교훈도 아닌데 뜨끔하게 되는 날카로움이 있고, 익숙한 테마인데도 함께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감동이 있고, 요란하거나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무엇보다 "신선한" 재미가 있다!
<신과 함께> '저승편'은 '더블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 줄기는 죽어 저승에 가게 된 '김자홍'이라는 자가 저승의 국선 변호사인 '진기한'과 함께 49일 동안 일곱 개의 "근대화"된 지옥을 지나며 일곱 번 재판을 받는 이야기이다. 서브 줄기는 억울한 사연으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원귀'와 그를 추격하는 저승삼차사(강림도령, 월직차사 이덕춘, 일직차사 해원맥)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저승'과 '이승'이 교차되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으나 우리 삶을 이끌고 있는 한국의 전통신화가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난다.
이 책은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지금껏 선량하게 살아온" 모든 소시민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김자홍은 이런 사람이다. "평생을 남에게 서운한 소리 한마디 못하고 손해만 보고 살아온 무골호인. 직장에서 얻은 과로와 술병으로 이승에서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저승삼차사를 따라 저승길에 오른다." 그러한 김자홍을 돕는 변호사 '진기한'은 그를 지옥에서 건져주는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다. 독자는 주인공이 일곱 개의 지옥을 건너는 동안 저절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혹시 "나쁜 놈"이라면, 이 책이 제법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 땅에서는 가진 것 없이, 내세울 것 없이,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지만 남 해코지 하지 않고 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위로를 얻고 '안심'할 수 있는 '착한 책'이다. 혹시 읽으며서 조금이라도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속히 자신을 점검하라!
"저승에서 심판을 받게 돼요. 당신이 직접 심판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요!"(163)
이 책이 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사람들의 잘못을 직접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재하건 실재하지 않건, '사후세계'의 존재는 인간이 그렇게 염원하는 대로, 진정한 '정의'가 살아 있고, 아름다운 '선'이 다스리는 세계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인류가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믿음이 아닐까.
백 마디의 설교보다 더 진하게 가슴을 울리는 이 책은 (좀 거창하게 표현을 하자면) 종교와 문화와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층의 독자층를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가졌다. 입소문으로라도 밀어주고 싶은 만화가이고 만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