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뻬 씨의 우정 여행 - 파리의 정신과 의사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은정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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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는 원시림의 나무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101).

 
우정에 대하여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는 아마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지나는 사춘기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 때는 인생의 모든 의미를 친구에게 두었으니 말이다. 친구와 떡볶이만 같이 먹어도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고, 우리가 나누었던 은밀한 비밀과 우리만의 추억이 쌓여갈수록 서로 깊이 결속된 느낌으로 충만했고, 그 끈끈한 우정의 동아줄이 위태로웠던 사춘기 시절을 든든하게 지탱해주었었다. 그러나 그 결속은 또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것이었는지 사소한 오해와 작은 실수들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갈림길을 만들기도 했고, 친구를 잃는 슬픔은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안겨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친구는 절대적인 의미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보다 더 친밀한, 나의 내면 가장 가까이에 와닿을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의 전부였던 친구 때문에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며 끊임없이 기뻐하고 아파하고 행복하고 상처 입으면서도, 정작 '우정'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이들에게 못되는 구는 사람들도 실은 마음속으로는 진정한 친구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24)을 인정하지 못했고, 우리가 그토록 진정한 친구를 찾고 싶었던 이유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라든지, "자기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30)라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파리의 정신과 의사 '꾸뻬 씨'가 이번에는 우정 여행을 떠났다. <꾸뻬 씨의 우정 여행>은 한 정신과 의사가 어느 날 갑자기 거액의 돈을 훔쳐 사라져버린 친구를 찾아나서며 탐구를 시도한 우정에 대한 작은 성찰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친구, 그를 찾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친구와 함께 사라져버린 거액의 돈, 친구가 보내온 수상한 엽서 등 미스테리한 분위기 속에서 끊임없는 의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친구를 돕기 위한 꾸뻬 씨의 모험과 갈등이 펼쳐진다.

<꾸뻬 씨의 우정 여행>은 친구를 찾아 떠나는 모험에 독자를 초청하며, 함께 우정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유도한다. <꾸뻬 씨의 우정 여행>은 알레스토렐레스의 '우정론'을 성찰의 도구로 삼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필요에 의한 우정', '여행을 위한 우정', '선한 우정'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진정한 우정은 마지막의 선한 우정뿐이었다(78). 그리고 어떤 우정이든 두 사람 사이에서 상호적일 때에만 생겨날 수 있고 또한 우정을 서로에게 숨김없이 표시해야만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강조했다(79). 꾸뻬 씨는 이 세 가지 척도를 자신의 친구 관계에 대입해본다. 그리고 사건에 맞닥뜨릴 때마다 관찰을 하고, 우정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함께 답을 해보도록 유도한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친구가 우리에게 도움을 부탁하지 않은 경우에는 친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서는 안 되는 걸까?", "사람들은 친구가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존재라고 곧잘 이야기하지. 그렇담 그들의 어려운 상황에 내가 기꺼이 도울 생각이 들만한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과연 어떤 점이 부족해서 나는 이들을 친구로 생각하기를 망설일까?"


"오래된 친구는 원시림의 나무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101).

<꾸뻬 씨의 우정 여행>이 내 마음에 가장 많은 울림을 남긴 질문은 이것이었다. 훨씬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옆에 있는데도 나는 왜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지금은 별다른 교류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오히려 친구라 여기는 것일까? 꾸뻬 씨가 우정 여행을 통해 찾아낸 한 가지 답은 "낡은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낡은 것 그 자체로는 아니지.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브라이스를 알고 지냈다는 그 사실이 브라이스를 흔치 않고 더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 거야. 함께한 추억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포기해버리는 건 쉽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다. 지금까지 우리 인생을 여러 줄의 실들로 뜨개질해 왔다면 브라이스는 그 중간에 끼어 있는 털실인 거야. 그 친구와 절교한다는 건 이 실을 끊어버려야 하는 것과 같아"(278).

참, 이상하게도 대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나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보다 사춘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에게서 더 끈끈한 우정을 느낀다. 우리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무엇이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끼는 공감대가 있다.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친구란 한줄기 안식이고 험난한 폭풍 속에서 숨어 들어갈 피난처가 된다"(31)고 정의할 수 있다면, 내겐 그 시절의 친구가 바로 그런 의미이다. 어떤 거짓도 없이 순수했으며, 함께한 추억들이 그대로 삶이 되었던, 그리하여 삶의 공통분모를 함께 나눠가지고 있는 친구들! 살수록 그런 친구를 더 많이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때만큼 순수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리라.

<꾸뻬 씨의 우정 여행>을 함께하며, 나만의 관찰 수첩에 우정에 관한 작은 깨달음을 하나 추가해본다. 살면서 깊이 깨달아지는 한 가지 사실은 어려울 때 옆에 있어주는 친구도 소중하지만, 기쁜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사실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바로 이 지점에서 친구와 친구가 아닌 사람들이 갈린다.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야 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비타민이다.

우정 때문에 깊이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삶이 메마른 이유를 찾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한국'이 깜짝 무대로 등장하고, 한국을 대하는 작가의 우정과 애정이 깃들어 있어 꾸뻬 씨의 어떤 여행보다 더 따뜻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해준다. 다른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그 누구도 친구 없이는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꾸뻬 씨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진정한 우정의 가치를 발견하고, 잃어버린 친구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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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4-2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