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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우리 삶을 망치는 것은 무엇일까?
'나'만 위해 살다가는 모두 함께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꿈의 도시>는 우리 사회의 오늘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 소설로 읽힌다. 개인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개인들의 이기심이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과장 없이 그리고 있다. 사회의 단면이 확대되어 보이기 때문에 다소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디테일하게 리얼하기 때문에 더욱 과장되어 보인다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다. 코믹한 분위기 안에서도 비극적인 감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유메노 시는 이상 기온 현상으로 추위가 계속되며 폭설에 시달린다. 이것도 환경 문제와 함께 유메노 시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장치로 해석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은 지방의 세 개의 군이 합쳐서 탄생한 일명 '꿈의 신도시, 유메노'이다. 그러나 '꿈의 신도시, 유메노'의 실상은 우울하기 그지 없다. 작은 가게들은 대형 마트에 밀려 모두 문을 닫았고,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떠날 기회만 엿보고 있고, 턱 없이 부족한 일자리에 생활보호비보다 적은 월급으로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사회적 기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아 있는 지방 유지나 정치인들도 제 잇속 차리기에만 급급한 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대도시 생활을 꿈꾸며, 마지 못해 살고 있는 형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하려는 사람들보다 생활보호비를 타내려는 사람들이 더 많고, 조직적인 사기 세일즈가 판을 치고, 좀도둑이 극성이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료한 일상을 핑계로 매춘이 젊은 주부들의 새로운 아르바이트가 되고, 이혼율이 급증하고, 혼자 사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그 와중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신흥 종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유메노 시 안에서 저마다 무지개빛 꿈을 안고 살아가는 다섯 명의 이야기가 릴레이로 이어지며,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현청으로 복귀할 꿈을 안고 있지만 당장은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공무원, 도쿄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여고생, 성공을 꿈꾸며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기 세일즈를 하는 조직의 일원인 전직 폭주족, 내세의 행복을 꿈꾸며 마트 식품 매장의 좀도둑을 적발하는 보안 요원, 출세 가도의 야망을 안고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재력가 시의원. 전혀 관계 없는 유메노의 이 다섯 시민이 제각각 예상밖의 곤경에 처하게 되면서 이들의 삶은 점점 서로 얽혀 들기 시작한다. 그들의 일상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개인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의 병폐가 점점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시민운동가의 방해로 곤란에 처한 시의원은 도시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 시민운동 따위는 없었던 시절을 그리워 하며 이렇게 회상한다. "예전에 무코다 지역에는 시민운동 따위 없었다. 유권자는 순종적이어서 겉으로 드러내놓고 이의를 주장하는 일도 없었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 혹은 일터마다 똑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공동체가 있었고 주민은 모두 그중 어디간에 속해 있었다. 개인이라는 건 없었다"(133). "그래서 정치와 행정은 편한 직업이었다. 약간의 뇌물은 윤활유로서 묵인되고, 공공사업은 알짜배기 단물이었다. 야마모토 가문이 부를 형성한 것은 대대로 지역 정치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정은 있었다. 돈줄이 막힌 사람에게는 일거리를 대주고, 서로 도우며 지내왔다. 누구든 이권을 독차지하는 건 허용되지 않고 부자에게는 베풀 의무가 있었다. 치안이 좋았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모두 어딘가에서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134).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혼을 하고 혼자서 생계를 꾸려가는 마트의 보안 요안 다에코는 지독한 고독감에 시달린다. "가족이 있어도 그 가족이 고민의 씨앗이다. 형제는 타인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자식들은 그보다 더 무서워서 하소연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냉대가 돌아온다면 자신은 나락의 밑바닥에 굴러 떨어질 것이다"(543).
"인간이란 참으로 별별 이유로 막다른 궁지에 내몰리는 모양이다"(526).
<꿈의 도시>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은 다소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휘말리며 궁지에 몰리게 된다. 계속되는 곤경으로 삶이 차츰 무너져내리고, 망가지는 데도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다. 모두들 외면할 뿐이다. 생활보호비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깔보았던 공무원은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제도적인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도쿄에 있는 대학 진학을 꿈꾸었던 여고생은 평소 무시하고 지냈을 법한 은둔형 외톨이에게 납치 당해 그의 지배를 받는 몸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폐만 끼치고 살다가 마음 잡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사기 세일즈맨은 이혼한 전처에게 발목이 잡혀 갓난 아이를 떠맡게 되고, 그 때문에 부모의 빚을 대신 갚아주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선배가 졸지에 살인자가 되면서 그 사건에 말려들어 끌려다니게 된다. 마트에서 좀도둑 잡아내는 보안 요원으로 일했던 여성은 종교 간 다툼으로 직장을 잃게 되면서 자신이 그렇게 경멸해마지 않았던 좀도둑이 되고 만다. 야쿠자 형제와 결탁해 세력을 유지해 온 시의원은 결국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거침 없이 몰아부쳤는데, 자신이 그 위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끌려들어가고, 발버둥을 칠수록 문제는 더 꼬여가고, 결국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기력해진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도 사회적 약자인가"(543).
사회가 거대해질수록 한 개인은 점차 사회적인 약자가 되어가는 듯하다. 세상은 참 잘 짜여서 돌아가고 있지만, 그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는 약자들은 일개 시민으로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를 날마다 몸소 체험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꿈의 도시>는 아무리 큰 꿈을 품고, 많이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한순간에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충돌하라! '충돌'을 통한 희망!
<꿈의 도시>의 클라이맥스, 하이라트는 광고된 것처럼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엔딩"에 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인상적이고 폭발적인 결말이다. 어치구니 없는 사건에 휘말리며 제각각 곤경에 처했던 다섯 인물은 이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서로 충돌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 듯한 그 충돌이 탈출구가 되고,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된다.
현대사회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꿈의 도시>, 두껍지만 지루할 시간이 없다. 현대사회의 병폐를 확인하며 그 안에 갇혀 살아가는 불쾌감이 온몸에 퍼지지만, 아직 늦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희망 한조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동시에 점점 망가져가는 삶을 지켜보며, 우리 삶을 망치는 것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