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켄 스토리콜렉터 1
아리카와 히로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온 힘을 다하여 무의미했고, 온 힘을 다하여 무모했고, 온 힘을 다하여 진지했다.
도대체 그런 시절을 인생에서 얼마나 보낼 수 있을까"(301).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여,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누구나 20대 청춘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누구나 '폭발하는 청춘'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온 힘을 다하여 무모할 수 있고, 온 힘을 다하여 진지할 수 있는 청춘의 것이리라. <키켄>은 그렇게 온 힘을 다하여 무의미했고, 온 힘을 다하여 무모했고, 온 힘을 다하여 진지했던 청춘남들의 이야기이며, 그런 청춘을 보낸 남자들만의 은밀한 추억이다.

세이난대학교의 수많은 동아리 중에, 캠퍼스 제일의 쾌적 공간을 자랑하는 '기계제어연구부'가 있었다. 약칭 키켄(機硏)! 그러나 세이난대학교에서 동아리 '키켄'은 곧 '위험'으로 통한다(危險의 일본어 발음이 키켄이라고 한다). '키켄'은, "동아리와 얽힌 갖가지 사건 때문에 일종의 두려움과 전율 속에 붙어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황금기의 키켄은 그야말로 위험 인물이 이끄는 위험 집단이었다"(7). 키켄을 이끄는 부장은 이 대학 제일의 위험인물인 2학년생 우에노, 그의 별명은 '세이난의 유나바머'(폭탄마의 이름)이다. 키켄의 차장은 '오오'랑 '가미' 사이에 '마'(魔)가 숨어 있다고 '성을 한 글자 감춘 오오가미'로 불리는 대마신 오오가미! 역시 2학년생인 오오가미와 우에노라는 환상의 콤비가 이끄는 '키켄'에 신입생 모토야마와 이케타니가 새로 가입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키켄>은 총 다섯 편의 동아리 이야기와 세월을 훌쩍 건너뛴 오늘의 이야기 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대학교에나 있을 법한 열정적인 괴짜 이야기, 열병 같은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 녹초가 되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놀았던 젊은이들의 축제 이야기, 그 안에서 벌어졌던 무모한 싸움과 혈기왕성했던 경쟁 이야기,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니었지만 그때는 무엇보다 절실했고 진지했던 열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제는 지나버린 그때 그 시절을 잔잔한 그리움과 행복한 미소로 추억할 수 있는 오늘의 우리가 있다.

표지 때문에 나처럼 이 책을 만화로 오해하는 독자가 있을 듯 하다. 한 편의 이야기마다 한 면씩 등장하는 만화는 이 작품을 처음 연재할 때부터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런 식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걸 시도해보았다"는 저자의 의도대로, 혈기왕성 청춘남들의 모무한 스캔들이라 할 수 있는 <키켄>은 소설이지만 만화 같은 재미가 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뭉클한 감동과 교훈이 있다. 의기투합된 청춘남들만의, 그 남자들의 이야기는, 절대 그들이 될 수 없는 여성 독자만이 아니라, 청춘을 지나온 자도, 청춘을 보내고 있는 자도, 청춘을 맞이할 자도, 모두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키켄>은 이제는 가정을 일구고 살아가는 인물이(혹시 스포일러가 될까봐 비밀로 한다) 아내에게 '그때 그 시절'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신의 추억담을 즐겁게 들어주는 아내와 함께 '지금' 여기에 있는 그 남자는 한 때는 자신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그 즐거운 장소, 즐거운 시간'을 현역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82). 더 이상 '키켄'의 부원이 아닌 때가 되어서야, 학교 축제에서 라면을 한 그릇이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 수풀에 머리를 쳐받고 잠들어버릴 만큼 열성적일 수 있었던 그 시절이야말로 얼마나 즐거운 것이었나를 깨닫게 된 그 남자는 자신의 모교를 다시 찾는 일을 조금은 두려워 한다. 빛나던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왜 우리는 항상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평범하지 그지 없는 일들이 왜 이렇게 특별하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다시는 그런 시간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정말 인정하기 싫다. 그러나 아내의 손을 잡고 축제일에 맞춰 다시 방문하게 된 대학교 강의실 칠판에서 그 시절을 함께 보낸 '키켄' 부원들이 남겨둔 낙서를 발견한 그 남자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우리는 키켄이었다. 키켄은 우리의 것이었다. 그 시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는다. 추억은 늘 거기에 있다. 그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보물이 되었다"(301).

이 책의 역자도 후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는데, 역자처럼 나도 "마지막의 '칠판'에서는 생각지도 않게 가슴이 뭉클해졌다"(308). 없진 것이 아니라 보물이 되었다는 한마디의 선언이, 진한 그리움과 함께 쓸쓸함으로 물들어가던 가슴에 따뜻한 보석상자 하나를 남겨 주었다. 내게도 보물이 있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불안했지만, 온 힘을 다해 무모할 수 있었던 그 시절로 언제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은 이제 내게 보석으로 남아 있다. 내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음에 감사하며, 그 시절을 함께했던 모무한 친구들이 있었음에 감사하며, 오늘의 보석을 만들기 위해 다시 온 힘을 다하여 무모하고, 온 힘을 다하여 진지하게 오늘을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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